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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컬처 파워, 독일의 선택 ④

컬처 파워, 독일의 선택 - ④ 유니레버 사옥

막힌 공간을 없애다 안팎이 환해지다 서로의 마음이 열리다
“여기가 회사 건물 맞아요?”

독일 북부 항구도시 함부르크 하펜시티에 자리한 유니레버(Unilever) 사옥에 근무하는 1200여 직원들은 이런 질문을 수없이 들었을 터다. 유니레버는 생활용품·식료품 등을 생산·유통하는 다국적 기업. 독일 사옥은 사무빌딩이라기보다 전시장, 혹은 쇼핑몰에 가까워 보였다.

 1년 전 독일 함부르크 하펜시티에 지어진 유니레버 독일 사옥의 내부. 밝고 개방적이며 서로 연결된 구조가 특징이다. [유니레버 제공] 
 
7층 높이의 유리천장이 올려다 보이는 로비는 마치 바깥처럼 환했다. 계단은 건물 구석이 아니라 가장 눈에 잘 띄는 가운데에 길처럼 나 있었다. 건물 양쪽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도 보였다. 엘베강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3층의 야외 테라스에서는 직원들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 노트북으로 일하고 있었다. 일터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겠다고 작정한 건축가 마틴 하스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났다.

  유니레버 사옥.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 투명 비닐막을 씌웠다. [유니레버 제공]
 
유니레버 사옥은 여러모로 시사적이다. 환경과 소통이란 우리 시대 화두를 건물 공간에 농축해 놓았다. 덕분에 상복도 터졌다. 지난해 6월 말 완공되자마자 함부르크 하펜시티의 친환경 건축상을 받고 친환경 인증에서 골드 라벨을 받았다. 또한 세계적 건축상인 WAF(World Architecture Festival Award)상과 BEX(Building Exchange Award)상도 휩쓸었다. ‘혁신적인 사무빌딩’이라는 찬사가 잇따랐다.

여기서 혁신성은 의외로 간단했다. 개방성과 소통· 친환경이었다. 일단 개방성. 건물 안팎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열린 디자인을 구현했다. 안으로, 밖으로 구획된 폐쇄공간을 없앴다. 기업과 소비자, 직원과 직원끼리의 소통을 추구하겠다는 경영철학이 읽혔다. 첨단 열 조절장치를 갖춘 유리천장, 친환경 LED 조명 등 이른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담았다.

◆만남 위해 열린 공간=유니레버는 건물은 직원들만의 것이 아니다. 직원들과 소비자와 만나는 공간으로 디자인했다. 카페와 스파, 요리방(소비자들이 요리강습을 받는 곳)과 가게(유니레버 숍)를 두루 갖췄다. 때문에 매일 방문객이 줄을 잇는다. 하루 평균 2000명이 넘는다. 회사와 고객의 거리를 줄인 셈이다.

유니레버 홍보담당 멀린 코언은 “흔히 지속가능성 하면 친환경만을 떠올리지만 공공성도 중요한 요소다. 좋은 공간을 주민들과 공유하고, 방문객들이 우리 브랜드를 체험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사무공간의 키워드도 만남과 소통이다. 건물 모든 층에 백화점 휴게실 뺨치는 만남의 장이 마련됐고, 야외 카페 같은 옥상에도 무선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와이파이(Wi-fi)가 설치됐다.

◆에너지 절약은 기본=여느 건물처럼 친환경도 핵심 컨셉트다. 무엇보다 조명이 눈에 띈다. 값은 비싸지만 훨씬 밝고 전력소모가 적은 LED조명을 설치했다. 그것도 건물 일부가 아니라 전체에 LED 조명을 사용했다. LED 전용건물로는 세계에서 첫 손에 꼽힌다.

건물 지붕에 올린 유리(solar control glass)와 조각이불처럼 건물 벽을 둘러싼 투명한 비닐 커버도 특이하다. 언뜻 보면 장식용처럼 보이는데, 실제론 에너지 절감을을 위한 첨단 장치다.

멀린 코언은 “생활용품을 생산·유통하는 회사인 만큼 창조와 혁신이 가장 중요하다. 회사도 단순한 업무공간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얻고 소통하는 곳, 사회변화를 알아채고 소비자와 함께 호흡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멋진 일터다. 디자인 경영의 모범 사례다.

함부르크=이은주 기자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중앙일보] 2010.08.04 00:08 입력 / 2010.08.04 00:53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