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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home&] 볼륨 업, 디자인 라디오

아날로그 감성 담은 인테리어의 양념

책상 앞에 앉아 라디오를 켜고 연필을 돌렸던 학창시절의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엽서를 써보내고, 유행곡을 녹음하려고 카세트 버튼에 손가락을 대고 DJ의 말이 언제 끝날까 귀를 쫑긋 세웠던 추억들….

라디오와 함께했던 ‘순수의 시대’는 가고, 이젠 mp3·인터넷·휴대전화로 방송을 듣고 ‘보이는 라디오’로 스튜디오를 들여다보는 시대가 됐다. 그렇게 우리의 아날로그 라디오는 설 자리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라디오는 여전히 살아 있다. 아날로그 감성을 담은 ‘복고 가전’으로, 공간을 꾸미는 깜찍한 인테리어 소품으로 존재의 이유를 더했을 뿐이다. 단순하고 투박한 옛 모습 그대로, 하지만 속살엔 첨단 기능을 갖춰 ‘디자인 라디오’란 이름도 달았다. ‘복고와 트렌드 사이’. 이 시대 라디오의 자리는 그 즈음에 있다.

글=이도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나무 프레임에 철제 장식 … 20·30이 반했다

  
 나무틀에 큼지막한 다이얼이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 티볼리. 20만원.
 
 
직장인 류지은(26)씨는 “인터넷으로 방송을 듣다 왠지 정감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라디오를 샀다”고 했다. 작고 실용적인 디자인도 많았지만 일부러 손으로 주파수를 조정하는 묵직한 복고풍 제품을 골랐다. 류씨는 “리모컨 없이 직접 채널을 돌리는 재미가 꽤 좋다”고 말했다.

복고와 아날로그, 디자인 라디오의 키워드다. ‘라디오’로 인터넷 검색을 하면 어김없이 네모반듯한 나무 프레임이나 살짝 구부러진 철제 장식 라디오가 1순위로 등장한다. 여기에 큼지막한 돌림 다이얼과 바늘까지 있으면 제대로 복고 분위기를 낸다. 아예 모양 자체를 60년대 마이크나 축음기에서 본뜬 제품들도 있다. 여기에 분홍·노랑·초록 등의 원색 라디오는 촌스러운 ‘옛날 냄새’를 물씬 풍긴다.

일부러 ‘손맛’을 강조하는 것도 디자인 라디오의 특징이다. ‘불편해서 때로는 행복하다’는 아날로그의 지령이 떠오를 정도다. 라디오에 붙은 줄을 잡아당겨 볼륨을 키우고, 라디오 위에 세운 막대기를 움직여 주파수를 맞추는 식이다. 버튼 한 번만 누르면 알아서 소리·채널을 조절하는 디지털 기능에선 후퇴했지만 ‘펀(fun)한 디자인’ 덕에 인기가 많다. 가격도 3만~5만원으로 제법 비싼 편이다.

그런데 이런 복고풍·아날로그 라디오는 누가 살까. 주 고객은 중장년층이 아닌 20~30대다. 생활소품 하나도 남들과 다른 것을 찾는 젊은 세대가 복고풍 라디오를 오히려 특이하게 보기 때문이다. 곽금주(심리학) 서울대 교수는 “소수의 젊은층은 첨단 문명을 따라가는 데 반항심이 있다”면서 “새로운 것만 좇는 또래와 차별화하기 위해 낡고 불편한 것에 흥미를 느낀다”고 분석했다.

친환경·아웃도어·스마트폰 … 숨어 있는 트렌드

1 케이스를 고무로 만든 방수 라디오. 반신욕할 때나 물놀이 갈 때 유용하다. 렉슨. 8만8000원. 2 60년대식 마이크를 본뜬 복고풍 라디오. 디자인에버. 2만5000원. 3 태양열 충전이 가능한 라디오. 햇볕이 약할 땐 손잡이를 돌리면 충전된다. 키커랜드. 6만5000원. 4 아이폰·아이팟을 끼워 스피커로 사용할 수 있고, 무선랜 기능이 있어 1만2000개 이상의 인터넷 라디오 채널을 들을 수 있다. 레보 by 극동음향. 60만원.
 
디자인이 복고풍이라고 기능까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니다. 디자인 라디오엔 나름의 첨단 기능이 숨어 있다. 디자인 전문 업체 두레샘의 송윤성 대리도 “수입 브랜드를 중심으로 최근 2~3년 새 라디오에도 최근 첨단 기능 등 트렌드를 반영한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 ‘친환경’이라는 메가 트렌드는 디자인 라디오에 이미 들어온 상태다. 대나무·옥수수전분·생분해성 플라스틱 등 자연 소재로 라디오 케이스를 만든 제품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건전지를 쓰지 않는 라디오도 등장했다. 연필깎이처럼 핸들을 돌려 자가발전하거나, 햇볕을 받아 충전하는 방식이다.

등산·캠핑 등이 유행하면서 아웃도어 활동에 적합한 라디오도 따로 나왔다. 고무로 만들어 방수가 되는 건 기본. 흙·모래가 묻은 손으로도 부담 없이 만지고, 스크래치의 걱정이 없어 쓰기 편하다. 산이나 해변가에서도 주파수가 잘 잡힌다는 게 제품 설명서마다 빠지지 않는다.

1 가운데 막대기를 움직여 주파수를 맞춘다. 렉슨. 4만8000원. 2 줄을 잡아당기면 주파수와 볼륨을 맞출 수 있다. 렉슨. 3만2000원. 3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FM 라디오. MP3·컴퓨터와 연결해 들을 수 있다. 모츠 by 상상마당. 4만5000원.
 
이 밖에 아이폰·아이팟을 끼우면 스피커로도 쓸 수 있는 ‘도크형 라디오’, 혼자 사는 나홀로족을 위한 초경량·초미니 라디오도 시대를 반영한 제품들이다.

박영춘 삼성디자인학교 제품디자인과 교수는 “복고풍 라디오에 첨단의 기능은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둘 다 소수의 매니어층을 위해 만든 디자인이라는 점에서는 통한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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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라디오’ 어디서 사나

소수를 위한 라디오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찾는 게 쉽다. 쇼핑몰마다 1만원대부터 50만원대까지 다양한 브랜드 제품이 있다.

●현대카드 프리비아 쇼핑 shop.hyundaicard.com

세인트루이스·티볼리·마그노 등 해외 브랜드 제품이 다양하다.

●디자인에버 www.designever.co.kr

1만원대 미만 제품이 많다. 우유갑·우산 등을 본뜬 귀여운 디자인을 고를 수 있다.

●스토리샵 www.storyshop.kr

턴테이블 모양의 라디오를 구한다면 이곳을 클릭할 것.

●렉슨스토어 www.lexonstore.com

디자인 소품 전문 쇼핑몰. 단순한 디자인이 특징인 렉슨의 제품이 많다.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권혁재 기자 [shotgun@joongang.co.kr] 

2010.08.16 00:03 입력 / 2010.08.16 00:03 수정
[중앙일보]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