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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세계의 소프트시티를 가다] <11> 취리히

[세계의 소프트시티를 가다] <11> 취리히- 금융과 예술의 행복한 동행

100년 금융도시에 스며든 공공미술… 파리 못잖은 예술도시로
문닫은 맥주공장에 미술관… 조선소를 극장·재즈클럽으로…
인구 36만에 갤러리 등 150여개… 각국 예술애호가들 몰려와

취리히 중심가 파라데 광장의 스위스은행 본점. 100년 이상 된 고풍스런 건축 양식이 세계적 금융중심도시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취리히의 상징이다. 
 
인구 36만명에 불과하지만 스위스 최대의 도시인 취리히는 세계적 컨설팅회사인 머서 휴먼 리소스 컨설팅이 2002~2008년 7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은 곳이다. 기업하기에도 편리하고 여가생활을 즐길 곳도 많으며 아이들을 키우기에도 좋은 도시라는 것이 선정 이유다.

원래 취리히는 취리히호(湖)의 수운을 이용해 남부 이탈리아와 독일과 프랑스의 교역을 중개하던, 유럽에서도 가난한 축에 속하던 작은 무역도시였다. 그러다 19세기 중반 스위스은행을 필두로 세계적인 금융ㆍ보험회사들이 이곳에 자리잡으며 전성기를 맞는다. 그리고 이제 취리히는 금융도시로서 축적한 부를 인간정신을 고양시키는 데 재투자하면서 뉴욕이나 파리 못지않은 세계적 예술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취리히 중앙역과 취리히 호수를 남북으로 잇는 반호프 거리의 파라데 광장. 광장 주변은 온통 금융회사 건물이다. 스위스의 대표 은행인 스위스은행과 유비에스(UBS)는 물론, 홍콩의 세계적 금융회사인 홍콩상하이은행(HSBC) 건물 등이 광장을 에워싸고 있다. 네덜란드의 아베엔 암로 은행, 독일의 알리안츠 보험회사 같은 굴지의 금융회사 건물도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한눈에 들어온다.

묵묵히 전통을 증언하는 이들 건물의 고풍스런 외관에서는 강렬한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 스위스은행 본점은 1876년, 유비에스 본점은 1899년에 반호프 거리에 들어선 뒤 지금까지 이 자리를 지켜왔다. 이 건물들이야말로 "바닥에는 금을 깔아놓았고 지하에 땅을 파고 들어가면 돈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취리히를 가본 사람들이 한다는 농담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부와 명성을 쌓아온 취리히 신화의 산 증인이다.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하이디 베버 뮤지엄. 

최근 땅값이 크게 오르면서 반호프 거리의 금융기관들은 시 외곽에 지점을 낸 뒤 그곳에서 주로 업무를 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 요즘 반호프 거리에서는 상징적인 업무만 하는 금융회사도 꽤 많다. 취리히 금융의 선구자로 불리는 알프레드 에셔(1819~1882)가 1876년 첫 창구를 열었던 스위스은행 본점은 지금 옛 전설이 아니라 건물 속에 입점한 화려한 부티크와 레스토랑, 커피숍들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든다.

이 때문에 "반호프 거리는 이제 옛 명성이나 팔아먹고 산다"는 비아냥이 들리기도 하지만 누구도 은행 간판을 떼어내자거나 건물을 다시 짓자는 말은 꺼내지 않는다. 스위스취리히연방공과대(ETH) 연구원인 도시계획가 마티나 바움은 "오래된 건물의 보존은 전통과 보안을 중시하는 은행의 이미지를 만들어냄으로써 고객들에게 신뢰감을 준다"며 "취리히는 오랫동안 경제, 문화, 정치 등 여러 측면에서 정체성 변신을 모색해 왔지만 파라데 광장의 건물들이 상징하는 금융도시로서의 정체성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기관이 취리히의 얼굴이라면 도시의 골목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150여개의 미술관과 전시장, 갤러리 같은 문화공간은 취리히의 예술적 정체성을 상징한다. 도심 동쪽 림마트강 기슭에 자리한 쿤스트하우스, 팝아트 전문 갤러리 마이36, 스위스 태생의 세계적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생애 마지막으로 설계한 하이디베버 뮤지엄 등은 말쑥한 정장을 차려입은 은행가들뿐 아니라 전세계의 예술 애호가들이 왜 취리히에 모여드는지를 설명해준다.

특기할 만한 것은 금융기관과 예술ㆍ문화공간의 상생이 취리히에서는 일상적이라는 것. 취리히웨스트 지역의 대표적 문화공간인 쿤스트할레 취리히는 유명 보험회사인 스위스레가 후원자이고, 슈펙타켈 극장과 여름극장의 후원은 취리히칸톤은행이 맡고 있다. 쿤스트할레 취리히 홍보담당자인 이사벨라 메시나는 "예술과 문화 분야에 대한 금융기관들의 관심은 매우 적극적"이라며 "이런 관심이야말로 우리가 대중들에게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반호프 거리가 지난 한 세기 동안 은행ㆍ보험업으로 명성을 쌓은 부르주아들의 공간이었다면 취리히역 서쪽의 웨스트취리히 지역은 조선소, 맥주공장, 장비공장 등이 즐비했던 노동자들의 구역이었다. 산업지대였던 이곳을 가로지르는 림마트 거리에는 노동자들 특유의 하위문화가 꽃피기도 했다. 그러나 인건비 상승으로 1980년대 후반 공장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4만여명의 노동자들이 해고되자 "활력을 잃고 텅 빈 이 지역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던져졌다.

맥주공장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는 미그로 미술관. 

이 물음에 가장 먼저 응답한 이들은 예술가들이었다. 방치돼있던 맥주회사 뢰벤브로이 양조장에 젊은 예술가들이 들어와 작업공간으로 쓰면서 변신이 시작됐다. 이곳이 예술가들이 모이는 장소라고 알음알음 입소문이 나자 스위스의 대형 유통회사인 미그로는 이 공장 건물을 사들여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몄다. 1995년에는 취리히의 대표적 전시공간인 쿤스트할레 취리히도 이 공장 건물 안으로 이전했다.

현재 미그로미술관과 쿤스트할레 취리히 외에도 5개의 갤러리가 이 건물 안에 들어있는데, 20~30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 위주로 전시를 꾸미는 것이 특징이다. 베른시에 거주하지만 두 달에 한 번 꼴로 취리히의 미그로미술관을 찾는다는 그래픽디자이너 케빈 묄러는 "유럽 여러 도시에 폐공장을 재활용한 전시공간이 생겨났지만 이곳은 7개나 되는 전시공간에서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차별성이 있다"고 말했다.

조선소였던 쉬프바우에는 공연장, 극장 등이 들어섰다. 

예술가적 영감으로 발상을 전환하면서 웨스트취리히 지역은 취리히의 새로운 활력이되고 있다. 조선소를 극장, 재즈클럽, 레스토랑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개조한 쉬프바우, 폐선된 철도의 교각 아래 50여개의 바와 클럽, 캐주얼한 부티크 등이 모여있는 비아둑트 거리 조성 등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마치 서울의 홍대 앞을 연상케 하는 비아둑트 거리의 커피숍 직원 라모나 볼츠리는 "문을 연 지 2~3개월밖에 안됐지만 주말이면 50여 개 테이블이 있는 가게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며 "자유분방하고 색다른 분위기를 즐기려는 젊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주로 찾는다"고 말했다.

다리 난간 일부를 도금한 공공미술 작품. 취리히의 금융자본주의를 풍자한다. 

이와 같은 변화는 금융도시로서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예술도시로의 정체성을 부여하려는 취리히 시 당국을 고무시키고 있다. 취리히 시의 올해 문화ㆍ예술 분야 예산은 7,300만 스위스프랑(약 800억원).

시 전체 예산의 1.5% 정도로, 15년째 증가 추세다. 베아트리체 에비 우르벤 취리히 시 지역개발부장은 "지역 자체를 예술적 공간으로 꾸민다는 것은 단순히 멋진 모습을 보여주자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금융과 예술, 금융과 문화의 결합은 취리히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입력시간 : 2010/08/11 21:07:12  수정시간 : 2010/08/11 21:5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