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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사회적 약자 배려가 유니버설 디자인

세계적 디자인 석학 줄리아 카심 좌담 내용 
 
“디자인은 미래의 투자다. 공공부문이 제공하는 각종 복지와 서비스를 모든 시민들이 편리하게 누리고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줄리아 카심 영국왕립예술대학(RCA·Royal College of Art) 교수가 내린 디자인에 대한 정의다. 카심 교수는 1998년부터 장애인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개념을 이끌고 있는 세계적인 디자인 석학이다. 그는 서울시가 2010 세계 디자인수도의 해를 맞이하여 개최한 서울 국제디자인 워크숍 2010 참석차 방한 중이다. 카심 교수가 20일 정경원 서울시 디자인서울총괄본부장과 만나 서울 디자인 시책 등 디자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다. 다음은 두 사람의 좌담 내용이다.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보편적 디자인)이 무엇인가.

카심 교수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사회적 약자들이 편리하게 공공부문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고민에서 출발한다. 지하철이나 버스 이용권 보장, 건물 접근성 향상 등도 모두 디자인으로 가능하다.

▲ 20일 오후 서울시청 별관에서 줄리아 카심(오른쪽) 영국왕립예술대 교수와 정경원 서울시 디자인 서울 총괄본부장이 서울시 디자인 정책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영국의 런던을 생각해 보자. 런던에 있는 오래된 건물과 19세기에 도입된 지하철 등은 ‘디자인’이란 개념 없이 만들졌다. 수십 개의 계단에다 곳곳에 널려 있는 보도턱과 높은 출입구 등 때문에 장애인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이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1995년 사회적 약자를 위한 ‘디자인’ 관련 법안이 만들어지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모든 건물에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통로가 생기고 문턱이 낮아졌으며 곳곳에 저상버스와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생겼다.

또 ‘읽히는 런던’이란 개념의 디자인 정책으로 복잡한 런던 길을 시민들이 편리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시골에서 온 사람이나 이민자들을 위한 정확한 지도, 표지판 등으로 누구나 쉽게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게 유니버설 디자인이다.

정 본부장 서울도 이를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표지판을 바꾸고 거리를 고치는 디자인 정책이 겉치레가 아니라 시민들의 삶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하는 것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만들 때 비용은 많이 들지만 시민들의 접근성과 이용률이 높아지면 결국 비용 대비 커다란 시민 만족도 상승을 가져온다.

그런데 장식이나 색을 바꾸는 것을 디자인으로 생각하는 시민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

카심 교수 디자인은 ‘물건을 왜 쓰고, 만들고, 누가 사용하는가 등’ 근본적인 문제해결의 열쇠라 할 수 있다. 대중 즉, 시민들과의 소통과 교감을 위한 다양한 디자인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특히 사회적 약자를 디자이너 그룹에 포함시켜 다양한 디자인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좋다. 한 가지 주제만 생각할 수 있는 디자이너들에게 사회적 약자들이 새로운 시각과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등 디자인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어서다.

트랜지스터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청기용으로 개발됐지만 라디오 등 모든 가전제품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타자기도 시각장애인을 위해 나왔지만 세계인이 쓸 수 있게 되는 등 많은 성공사례가 있다.

→서울시의 디자인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카심 교수 정치적으로 많은 공격을 당할 수 있는 디자인정책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오세훈 시장은 참 용감하다. 이 때문에 세계 디자인계에서도 서울의 디자인 정책을 지켜보고 있다.

정 본부장 오 시장이 정치가로서 디자인을 선택한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 본다. 앞으로 서울의 모든 부분이 새로운 시스템으로 디자인 될 것이다.

→서울의 유니버설 디자인 수준은 어떤가.

카심 교수 서울 지하철은 세계적으로 약자를 위한 배려가 뛰어나지만 버스의 경우, 아직도 저상버스 등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하지만 공공건물과 학교 등 장애인들을 위한 디자인이 훌륭하다.

정 본부장 서울을 사회적 약자를 위한 무장애 도시로 만드는 것이 도시 디자인의 한 목표다. 문정지구나 마곡지구를 휠체어를 타거나 걷는 시민을 배려하는 그런 도시로 만들기로 했다.

→서울 국제디자인 워크숍 2010은 어떤 행사인가.

정 본부장 23일까지 서울 국민대학교에서 열린다. 카심 교수가 이번 워크숍 지도교수를 맡고 있기도 하다.

워크숍에는 미국, 영국, 이태리, 일본 등 17개국 80명의 세계적인 신진 디자이너들이 참가해 디자인에 대해 토론한다. 외국에서 참석하는 경우, 항공료를 본인이 부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좋은 결과물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카심 교수 걱정하지 말라. 오는 10월 서울 디자인 한마당에 전시할 훌륭한 작품이 나올 것이다. 이번 워크숍에는 팀별로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섞여 있다. 시각, 산업, 제품, 환경 등 각 분야 디자이너의 재능이 혼합된 균형을 통해 시민을 위한 다양한 작품으로 탄생하게 된다.

정 본부장 디자인은 멋을 내는 것만이 아니라 120 다산콜센터, 재정교부금 재조정, 인사제도 변화 등 모든 것이 바로 큰 의미의 ‘서비스 디자인’이다. 워크숍에서 나온 현실성 있는 결과물은 시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등 시민들의 복지를 위한 디자인 정책을 펼쳐 가겠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서울신문 | 2010-07-21  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