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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시각

그래피티로 세상을 바꾼 천재 예술가

임근혜 미술평론가가 본 키스 해링
 
도시 벽화인 `그래피티`를 당당하게 미술사에 올린 선구적 아티스트는 키스 해링이다. 그는 명문대학인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 출신이지만 화상과 큐레이터, 비평가에게 아첨하며 부와 명예를 구걸하는 작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하얀 캔버스를 벗어나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빛을 발산하는 아기, 멍멍 짖는 강아지, 통통한 비행접시 같은 다양한 이미지는 이내 뉴요커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해링은 유쾌한 상상 바이러스를 더 널리 퍼뜨리기 위해 조그만 배지에 그림을 그려넣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그의 배지를 단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었다. 이것이 해링이 바랐던 `소통`의 생명력이었다. 이와 더불어 작가 자신도 점차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뉴욕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화랑과 미술관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그러자 그가 새로운 그림을 그릴 때마다 이를 뜯어내서 거액에 파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자신의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품이 이용되자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1986년 뉴욕 소호에서 오픈한 팝숍이다. 팝숍의 아이템은 해링의 이미지를 담은 복제품으로 가격은 고작 포스터 한 장에 1달러, 배지 하나에 50센트 정도였다.

해링의 그림이 그저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것에 그쳤다면 그의 명성이 사후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만화처럼 단순한 이미지에 삶과 죽음, 평화와 폭력 등의 인간사에 대한 다양한 성찰을 담고 있다. 특히 1988년 에이즈 진단을 받은 이후엔 동성애와 에이즈에 대한 편견에 도전하고 청소년들에게 세이프 섹스를 알리기 위한 메시지를 담았다. 키스 해링은 1980년대 뉴욕 언더그라운드 문화 황금기의 산물이다.

그는 차갑고 갑갑한 미술관에 갇히지 않고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며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다. 그는 서른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이러한 의지만큼은 조그만 배지, 티셔츠 그리고 포스터 같은 사사로운 물건 속 이미지들과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사회의 악습과 편견에 맞서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게 한 아름다운 청년정신. 그것은 엘리트주의를 벗어나 시각예술을 대중문화와 상업 영역으로 확장했다는 미술사적 의미보다 더 위대한 업적이다.

[임근혜 미술평론가ㆍ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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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7 16:03:30 입력, 최종수정 2010.06.27 20:2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