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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가구 박람회서 가구는 안 팔고 도면만 판다?

[디자인 홀릭] 가구 박람회서 가구는 안 팔고 도면만 판다?

벨기에 가구 회사의 모험
인건비·물류비 안 들이고 '아이디어'만 판매… "생산비용 20%는 줄어"

지난 4월 열렸던 이탈리아 밀라노 가구 박람회. 이곳에 참여한 약 2500여개 업체는 대부분 이들 회사가 디자인한 가구를 그대로 전시하거나 가구 컬렉션 사진을 찍어서 전시한다. 한데 벨기에에서 온 가구 회사 '익스트레미스(Extremis)'가 전시한 건 작은 상자들뿐이었다.

이 회사가 만드는 건 야외용 탁자나 의자. 그 작은 상자 안엔 이들이 디자인한 가구를 직접 따라 만들어볼 수 있는 도록이 들어 있다. 다시 말해 이들은 가구를 전시하거나 판매하는 게 아니라, 가구 디자인과 그 가구를 만드는 방법을 파는 것이다. 왜 이런 결정을 한 것일까?

▲ ‘익스트레미스’에서 판매하는 가구 설계도면. /익스트레미스 제공

박람회에 참여했던 우리나라 가구회사 '일룸'의 소중희 마케팅 총괄팀장은 "요즘 대부분의 가구 제작을 인건비가 비교적 싼 동남아나 중국에서 하고 있고, 또 이들 공장을 거치지 않으면 사실상 수출이 힘든 만큼 유럽회사들은 이래저래 고민이 많다"며 "그래서 아예 자신들의 고유한 아이디어와 디자인 개념 그 자체를 판매하기로 하는 회사가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회사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가봐도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만든 완성품보단 이들 제품을 그림을 보면서 따라 만들어볼 수 있는 도록 상자를 주요품목으로 홍보하고 있다. 가구를 완성하는 데 드는 인건비, 완제품을 완성하는 데 드는 물류비를 줄이고, 대신 아이디어만큼은 '우리 것'임을 확실히 하겠다는 선언. 밀라노 박람회에 처음 소개된 가구가 몇달 뒤엔 중국 박람회에서 똑같이 나올 정도로 '베낀 상품'이 판을 치고,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도산하는 유럽 가구 회사가 늘어나는 요즘, '익스트레미스'의 행보는 그야말로 새로운 도전이다.

이 회사의 총괄 책임자 더크 위넌츠(Wynants)는 블로그를 통해 "완제품을 판매할 때보다 생산비용이 약 20%는 줄어든다. 단순히 비용을 줄이는 걸 넘어서 디자이너 고유의 아이디어를 보존하고 환경까지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송혜진 기자 enavel@chosun.com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입력 : 2010.07.02 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