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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으로 보는 디자인 세계

기업 하시는 분들, 혹시 말로만 디자인 디자인 하고 있지 않나요
 
요즘 디자인이 화두입니다. 하지만 디자인에 대한 오해도 적지 않습니다. 디자인을 ‘모양’으로 생각하는 것, 값비싼 상품으로 여기는 것이죠. 오히려 전문가들은 디자인은 생활이며, 철학이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아 디자인과 친해지기 위해 읽을 만한 책들을 모았습니다. 디자인을 바라보는 참신한 시각을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이은주 기자

기존의 것 미지화시키는 창조적 일, 리디자인

 디자인은 멀리 있지 않다. 생활 속에 있다. 사진은 윌리엄 페인터가 디자인해 1892년 특허를 얻은 왕관형 병마개. [다빈치 제공] 
 
디자인의 디자인

하라 켄야 지음, 민병걸 옮김, 안그라픽스, 245쪽, 1만5000원
 
이 책을 사람에 비유한다면 단아한 체구에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편은 아니지만 다가가서 대화를 나눠보면 꽉 찬 속을 보여주는 사람일 테다. 그만큼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에, 간결하지만 깊이를 갖춘 글과 사진이 매력적이다.

저자인 하라 켄야는 일본디자인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무사시노미술대학 교수다. 백화점 리뉴얼 작업에서부터 나가노 겨울 올림픽 개·폐회식 프로그램, 일본 각지의 술과 쌀의 홍보 디자인 등 공간과 그래픽을 가로지르며 디자인 경험을 쌓았다. 책은 그가 큐레이팅을 한 ‘리디자인(Re-design)’ 전시, ‘무인양품’ ‘마쓰야 긴자’ 백화점 리뉴얼 작업 등 자신이 참여한 여러 프로젝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얼핏 들으면 ‘리디자인’이 뭔가 싶지만,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보면 “리디자인은 기존의 것을 미지화시키는 것”이며 “그것 역시 창조”라는 설명에 공감하게 된다. 그래픽 디자이너 이기섭씨는 “일본 디자인 얘기를 자세히 들려주지만 그의 시각을 통해 세계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책”이라 소개했다. 제26회 산토리 학예상(예술·문학부분)을 받았다. 원제 『Designing design』.

하나의 문화가 된, 책 표지 디자인의 대명사

펭귄 북디자인 1935-2005
필 베인스 지음, 김형진 옮김, 북노마드, 263쪽, 1만8000원

“펭귄이 ‘문고판의 대명사’로 불리는 데에는 독특한 책 디자인이 큰 몫을 했다. 고전(古典)일수록 독자들에게 더 새롭고 친근하게 다가가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표지 디자인에 더욱 중점을 둔다.”

2008년 아담 프로이덴하임 펭귄 클래식 대표가 본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펭귄북은 올해로 75년이 되는 출판사. 펭귄의 표지 디자인은 이제 영국 문화의 일부이자 디자인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저자는 영국 세인트 마틴과 왕립미술학교(RCA) 출신으로 현재 세인트 마틴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그는 펭귄의 디자인 역사를 훑으며 ‘전략적 사고’와 ‘시각적 감각’을 유기적으로 통합한 그래픽 디자인의 진화를 설명한다. 책의 가장 큰 매력은 500개가 넘는 표지 디자인의 이미지. 글보다 그림이 많으니 특히 시각적인 즐거움을 중시하는 독자들에게는 더 반가울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도판을 많이 썼지만 펭귄의 홍보 책자가 아니다”며 “디자인에 대한 커다란 윤곽으로 보아달라”고 주문했다. ‘타이포그래피 혁명가’로 불리는 얀 치홀트(1902~1975)가 펭귄 클래식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살펴볼 것. 원제 『Penguin by design』.

볼펜·반창고·지우개…사소한 것들의 대단함

디자인, 일상의 경이
파올라 안토넬리 지음, 이경하·서나연 옮김, 다빈치, 219쪽, 1만5000원
 
2008년 말,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 디자인미술관에서 ‘Humble Masterpieces-디자인, 일상의 경이’전이 열렸다.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은 전시를 보고 다소 당황했다. 명색이 디자인 전시인데, 전시품은 빅(BIC)볼펜에서부터 엠앤엔스 초콜릿, 포스트잇, 반창고, 지우개 등 흔하디 흔한 물건들이었다. MoMA(뉴욕현대미술관)의 국내 첫 공식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은 허를 찔린 듯한 반응이었다.

전시의 핵심이 바로 ‘허를 찌르는 것’이었다. 전시 기획자인 모마의 건축 디자인 부문 수석 큐레이터인 파올로 안토넬리가 이 책을 썼다. 책은 소박한 디자인 걸작 모음집이다. 우리가 매일 쓰고 있는 작은 일상 용품이 훌륭한 기능과 더불어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창의성의 산물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지은이의 디자인 철학은 간명하다. 훌륭한 디자인은 가장 단순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 그리고 친밀하다는 것이다. ‘디자인=화려한 것’이라는 잘못된 통념을 깨고 결국 진정한 디자인이란 “일상의 친숙함과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려준다. 원제 『Humble Masterpieces: Everyday Marvels design』.

이미지, 우리를 유혹하고 지배하는 거대한 힘

거인에게 복종하라
릭 포이너 지음, 박성은 옮김, 비즈앤비즈, 224쪽, 2만2000원
 
세계적 디자인 평론가이자 작가이며 영국의 그래픽 잡지 ‘Eye’의 편집장을 역임한 릭 포이너의 대표작. 디자인·광고·출판·사진·예술 분야를 넘나들며 글로벌 시장의 핵심적인 이슈를 명쾌하게 들춰냈다는 평가를 받는 디자인 비평서다. 디자이너와 시각적인 작업 분야 종사자들이 어떻게 이미지 세상과 결탁하고, 저항하며, 기업식 통제를 가하는지 보여준다.

이 책에서 그는 주로 ‘비평적 디자인’ ‘시대정신이 살아 있는 디자이너’를 주제로 질문을 던지며 우리를 둘러싼 시각적 이미지가 전혀 다른 목적을 위해 의미가 조작되고 통제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다소 모호하게 들리는 제목은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가 만들어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는 ‘거인에게 복종하라(Obey Giant)’라는 포스터 캠페인에서 따왔다. 거인의 어떠한 명령에도 꼼짝없이 복종하게 되는 것처럼 이미지에 압도당한 현대 사회를 빗댄 뜻으로 읽힌다. 서울대 디자인학부 김경선 교수는 “각종 이미지의 뜻을 통찰력 있게 짚어낸 책”이라고 평했다. 원제 『Obey the Giant: Life in the Image world』.

웃기면서 서글프다, 한국 디자인의 실체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
홍동원 지음, 동녘, 296쪽, 1만3000원
 
출판 디자인 전문 아트디렉터 홍동원(글씨디자인 대표)씨가 디자인 현장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담아낸 에세이. 홍씨는 『단원풍속도첩』『이건희 에세이』등 단행본을 포함, 포항제철의 팩트북 등 다양한 기업의 카탈로그·로고·캘린더 작업을 해온 베테랑 디자이너다. ‘비둘기 똥구멍’이란 말은 디자이너들의 관용어로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디자인을 요구 받는 상황”을 가리키며 디자인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을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상황을 준엄하게 꾸짖기보다는 마치 시트콤의 장면처럼 유머로 풀어냈다. 덕분에 디자인을 잘 모르는 독자도 쉽게 그의 얘기에 끌려들어간다. 책을 쓴 동기에 대해 그는 본지 인터뷰에서 “디자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싶었다”며 “디자인은 쇼가 아니라 생활이고 팀워크이며, 조형이 아니라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입으로는 “외국과 경쟁해야 한다”면서도 정작 디자인을 수용하는 데는 보수적인 기업인들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밝혔다. 월간 ‘디자인’의 김신 편집장은 “베테랑 디자이너가 현장에서 겪은 체험을 통해 한국 디자인의 실체를 서글프고도 실감나게 보여준 책”이라고 말했다.

만화로 보는 20세기 대표 디자인 이야기

디자인 캐리커처
김재훈 글·그림, 디자인하우스, 272쪽, 1만5800원
 
뉴욕 하면 떠오르는 ‘‘I ♥ NY’은 밀턴 그레이저라는 디자이너가 1975년에 뉴욕시 당국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도안으로 명실공히 뉴욕의 상징이 됐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바르셀로나 의자는 1929년에 탄생했지만 단순하면서도 격조와 세련미를 갖추고 있어 여전히 인기다. 이 책엔 청바지의 전설부터 포스터의 아버지 카상드르,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디자인 이야기가 친근한 만화로 담겼다. “국내 만화가가 그린 것이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독특한 색감과 선 등 그림도 매력이지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마치 단편 영화를 보여주듯이 디자인이 만들어진 상황을 간결하게 포착해낸 스토리가 특히 탁월하다.

일반 독자들이 디자인과 친해지기 위해 가장 먼저 읽으면 좋을 책이다. 저자는 유머를 가미하면서도 “디자인은 역시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자신의 목소리를 담았다. 각기 독립된 50개 에피소드가 담겨 있어 가까이에 두고 끊어서 읽기 좋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2010.06.24 00:30 입력 / 2010.06.24 00: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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