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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수방대책, 수준을 높여라-(3) 디자인 개발의 허실] 산책·둘레길로 산자락 ‘생채기’


서울시가 ‘디자인, 웰빙, 친환경’이란 세련된 이름을 앞세워 이곳저곳에 조성한 공원과 둘레길 곳곳이 지형이나 기후변화에 걸맞은 수해방지 시설을 갖추지 않고 있다. 겉모습은 보기 좋지만 안전에 취약한 ‘개념 없는 개발’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산사태 1등급 지역에 자리 잡은 공원·둘레길=지난해 서울시는 동네 주변 산자락을 ‘웰빙 공원숲’으로 조성하는 동네뒷산 공원화 사업을 완료했다. 3년간 2250억원을 들여 공원 57곳을 새로 정비했다. 그러나 57곳의 지도를 1일 산림청 산사태위험지 관리 시스템에서 확인한 결과 공원 3곳이 산사태 1등급 지역에 인접해 있었다. 방화동 꿩고개공원, 길동 일자산 도시자연공원, 수색동 봉산 도시자연공원은 1등급 지역에서 반경 100m 안에 위치했다. 산사태 1등급 지역은 강수량이 시간당 30㎜ 이상일 때 매우 위험한 곳을 의미한다.

하지만 해당 공원에 산사태를 방지할 사방댐은 없었다. 빗물을 흘려보내는 수로도 엉망이었다. 이날 찾은 꿩고개공원은 움푹 파인 구덩이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일부 둘레길은 유실됐고 물만 흥건히 넘쳤다. 공원을 장식했던 통나무 울타리는 뿌리째 뽑혀 길가에 쓰러져 있었다. 공원을 찾은 차삼순(76·여)씨는 “매년 비만 오면 쓰러진 나뭇가지에 길이 위험한 곳으로 변하는데 아무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원이 자리 잡은 산에는 하나같이 ‘둘레길’ ‘트레킹길’이란 이름의 산책길이 있다. 서울시가 등산객의 편의를 높이기 위해 조성한 것이다. 하지만 산책로를 따라 형성된 수로는 제 기능을 못하고 있었다. 일자산공원은 수로 양 옆에 쌓아올린 큰 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이 돌이 수로를 막을 위험도 있어보였다.

유철상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교수는 “산사태를 막으려면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않도록 배수로를 배치하고, 폭을 넓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공원에는 계곡을 따라 수로가 있는데 여기에 물을 흘려보내 수압과 에너지를 미리 측정하고, 이 데이터를 근거로 사방댐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생태보원팀 관계자는 “서울에 있는 산 가운데 사방댐이 설치된 곳은 한 곳도 없다”면서 “산에 공원이나 등산로를 낸다고 산사태 위험이 그렇게 커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디자인만 강조되고 배수는 안 되는 ‘상상 어린이공원’=서울시가 천편일률적인 놀이터를 탈피하자는 취지로 디자인 측면을 강조해 만든 ‘상상 어린이공원’도 배수시설을 고려하지 않아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상상 어린이공원 사업은 25개 자치구 어린이공원 300곳 중 10년 이상 된 놀이터를 창의적이고 예쁘게 탈바꿈시키는 것으로 지난해 완료됐다.

서울 면목동 양지어린이공원 주변 주민들은 2009년 상상 어린이공원이 조성된 뒤 비가 많이 내릴 때마다 집에 물이 찬다고 호소했다. 양지공원을 가보니 물받이가 보이지 않았다. 공원 주위에 소형 하수구 4개가 있었지만 빗물에 떠내려 온 낙엽이나 쓰레기에 금세 막힐 정도로 작았다.

공원 옆 단층집에 사는 정창훈(47)씨는 “지난주 폭우 때 지하창고에 물이 무릎 높이까지 차올랐다”고 말했다. 중랑구 관계자는 “조성 당시 배수시설을 기준에 맞게 설치했으나 전례 없는 폭우로 배수가 원활하게 되지 못했다”며 “추가 설치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선희 유동근 기자 sunny@kmib.co.kr 

2011.08.01 22:00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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