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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시각

[조선일보 비주얼 특별기획 image] 우리가 누구게?

포장이 말 건다, 포장이 이야기 들려준다, 포장이 웃겨준다… 포장의 진화

포장이 제품을 싸는 껍데기일 뿐이었던 시절은 지났다. 물건이 가득 쌓인 진열대 앞에서의 '선택의 순간', 어떤 걸 사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그 순간에 포장은 말을 걸어온다. "절 집어 주세요. "포장은 이제 구매의 마지막 순간에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역할까지 해내야 한다. 국내 디자인계에서 대표적인 포장 디자인 전문가로 손꼽히는 이영희 씨디스어소시에이션 대표는 "광고가 후방에서 지원하는 포병이라면 포장 디자인은 전선의 최전방에서 돌격하는 보병"이라고 포장의 기능을 집약적으로 표현했다.

그렇다고 포장이 무작정 화려하고 요란해야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상대를 설득하는 화술(話術)에 여러 가지가 있듯 포장도 다양한 방법으로 말을 걸고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레드닷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어워드(www.red-dot.org), iF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어워드(www.ifdesign.de), 런던 국제 어워드(www.liaawards.com), 펜트 어워드(www.pentawards.com) 등 패키지 디자인과 관련된 세계적인 디자인상을 통해 최근 포장 디자인의 추세를 살펴봤다.

▲ 사람이냐 털실이냐… 무릎치는 포장 - 렐라나 울(Rellana Wool)의 털실이 머리카락과 수염이 됐다. 오길비 프랑크푸르트(Ogilvy Frankfurt)디자인으로 2009년 런던국제어워드(LIA) 금상을 받았다.

◆소비자와 이야기하라

이야기는 쉽게 기억된다.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도 좋다. 스웨덴 디자인회사 '마더랜드 브랜딩 앤 디자인'은 아르헨티나산 와인 상자에 이야기 한 토막을 그림으로 그려 넣었다. '결혼식장으로 가던 신랑이 요정의 유혹에 넘어가자 실망한 신부는 떠나버린다. 포도 농장에서 진정한 사랑을 만난 신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다섯 장면으로 나뉜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이어 가는 동안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넓게 펼쳐진 포도밭과 포도의 달콤한 향기를 떠올리게 된다.

같은 곳에 머물러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가슴에 담아 간다. 스페인의 초콜릿 전문점 '초콜릿 팩토리'는 여기에 착안해 제품 포장을 엽서처럼 꾸몄다. 앞면에는 '마드리드로부터 초콜릿을 담아(From Madrid with Chocolate)'와 같은 문구로 도시 이름을 강조했다. 007 시리즈 영화의 제목 '러시아로부터 사랑을 담아(From Russia with Love)'를 패러디한 것. 뒷면은 실제 엽서처럼 디자인해 도시에서의 추억을 소비자가 직접 적어넣게 했다.


 ◆웃음, 만국 공용어

웃음은 세계 어디서든 통하는 만국 공용어다. 소비자를 웃음짓게 하면 그의 마음을 움직일 가능성도 커진다.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웃음의 힘이다.

독일의 모직물 브랜드 '렐라나 울'은 겨울용 털실 뭉치를 감은 종이 띠에 얼굴을 그려넣었다. 흰 실에는 백발의 노인, 갈색 실에는 구레나룻이 무성한 남자의 얼굴을 그렸다. 그러자 띠의 아래위로 삐져나온 털실이 머리카락이 되고 수염이 됐다. 털실의 까슬까슬한 질감이 털모자나 목도리처럼 털실로 짠 제품을 연상시키는 효과까지 고려한 디자인이다.

호주의 디자인회사 '더 크리에이티브 메소드'는 고객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에 웃음을 함께 담았다. 와인과 함께 눈·코·입이 그려진 스티커가 들어 있다. 선물을 받는 기쁨, 스티커를 병에 붙이며 얼굴을 완성하는 재미, 완성된 표정을 보면서 느끼는 즐거움까지 일석삼조의 효과다.


 ◆고정관념의 허를 찌르라

'예상치 못한 것'을 대했을 때 사람들은 무릎을 친다. '와인 에즈 백 인 박스(wine as bag-in-box)'는 영락없이 핸드백을 닮았지만, 안에는 팩 와인이 들어 있다. 꼭지를 열면 와인이 흘러나온다. 샴페인으로 유명한 '뵈브 클리코'의 샴페인 포장은 견고한 냉장고 모양으로 궁금증을 자아낸다. 손잡이가 달린 문을 열어 봐야 비로소 샴페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양만 흉내 낸 게 아니라 실제로 2시간 정도 냉장이 가능한 '이동식 미니 냉장고'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가 용기를 디자인한 애경의 주방세제 '순샘버블'은 2010년 펜트어워드 은상과 레드닷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상을 받았다. 부드러운 곡선을 사용한 용기는 언뜻 보면 화장품 병으로 착각할 만하다. 세제 통을 주방의 인테리어 소품처럼 활용할 수 있게 했다는 설명이다. 장 자크 에브라르 펜트어워드 공동설립자는 "톡톡 튀는 창의성으로 무장한 한국 제품의 포장 디자인이 최근 펜트 어워드를 비롯한 세계 무대에서 호평받고 있다"고 했다.

◆쓰고 또 쓸 수 있는 포장

'친환경'은 이제 디자인이 당연히 갖춰야 할 가치가 됐다. LG전자의 '리유저블 에코 패키지(reusable eco package)'는 '재사용 가능한 친환경 포장'이라는 뜻 그대로 제품 상자를 액자·연필꽂이 등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재활용하게 하려면 예쁜 디자인은 기본이다.

'크러시팩'은 손으로 납작하게 접을 수 있는 용기다. 요구르트나 젤리처럼 걸쭉한 음식을 쉽게 짜 먹을 수 있다. 숟가락이 필요 없고, 용기가 접힐 것을 고려해 겉에 라벨을 붙이지 않는다. 그만큼 재료의 사용을 줄여 자원을 절약할 수 있다.

'뉴스페이퍼 투 뉴 페이퍼(newspaper to new paper)'는 헌 신문지에 무늬를 넣은 포장지다. 비닐봉지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아이디어다. 기발한 착안을 통한 작은 변화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법. '뉴스페이퍼 투 뉴 페이퍼' 포장지를 시험 사용한 시장의 매출이 이전보다 20%가량이나 늘어났다고 한다. 

채민기 기자 chaepline@chosun.com

기사입력 : 2011.07.13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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