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esign Trend/환경

[수도권II] DMZ 인근 해마루촌, 디자인마을로 변신하다

민통선내 최북단 실향민마을
부산동서대 교수와 학생들, 고라니·이정표·벽화·벤치 등 2년째 평화·통일 공공디자인
"DMZ 인근 해마루촌 입구에는 4m 크기 대형 고라니가 뛰어놀아요."

경기도 파주 민통선 남한지역 최북단에 있는 민간인 거주 마을 해마루촌.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으로부터 2㎞밖에 안되고, 수시로 군부대 총소리가 울려퍼지는 이 마을이 한반도 남단 부산 지역의 대학생들과 교수에 의해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디자인 마을로 탈바꿈하고 있다.

◆수시로 총성이 울려퍼지는 전원마을

지난 7일 오전 비가 추적추적 내리다 그쳤다 반복하는 속에서 임진강 두포나루터 옆 전진교에 이르렀다. 바리케이드를 친 검문소에서 군인들이 방문 목적을 묻는다. 마을 이장님을 찾아왔다 말하니 전화연락을 해보던 끝에 통과시킨다. 다리를 건너 아스팔트 포장길 따라 5km쯤 더 달리니 해마루촌 입구에 우뚝 서있는 고라니가 귀를 쫑긋 세우고 방문객을 환영한다.

▲ 최북단 접경 지역 해마루촌 입구에 폐목 등을 활용해 제작된 고라니는 평화와 통일을 상징하는 이 마을의 아이콘이다. 안병진 교수가 정재겸 이장에게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동서대 제공

마을 안으로 들어서니 이곳이 지금 당장이라도 남북의 총성이 울려퍼질 것 같은 민통선 안의 마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슬라브집, 기와집, 조립식집 등 모든 가옥이 아담하면서도 깨끗하다. 아름다운 전원주택 단지 같은 느낌이다. 담배꽁초는 물론, 쓰레기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길도 곳곳이 아스팔트로 잘 포장돼있지만 다니는 차가 거의 없어 한적하기 그지없다. 마을 이장이 유유히 자전거를 타고나와 반갑게 맞아준다.

이 전원주택 단지 같은 해마루촌을 새로운 디자인 도시로 바꾸고 있는 주역은 부산 동서대학교 디자인학부 안병진(52) 교수와 학생들이다.

이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공공디자인 프로젝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는 7월3일부터 9일까지 일주일간 해마루촌에서 친환경 조형물을 제작·설치하였다.

안 교수는 "아버지가 2년 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이곳에 거주하셔서 그동안 1년에 두세 차례씩은 계속 방문하고 있었다"며 "멀리 부산에 가서 교수생활을 하면서 이곳에 새로운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이 뭘까 고민하다 시작했다"고 했다.
 

▲ 여름방학을 맞아 해마루촌에서 2년째 공공디자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동서대 디자인학부 학생들. /동서대 제공

안 교수는 아버지를 비롯해 전쟁으로 쫓겨났던 실향민들이 DMZ마을로 회귀하는 것을 보고 'DMZ dna'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이 실향민들에게 DMZ 일대에서 남북 구분없이 자유롭게 왔다갔다하는 고라니는 실향민들의 염원을 대변해주는 그 자체였다. 그래서 추진한 것이 '높은음자리에 고라니 뛰어놀다'라는 프로젝트의 이번 봉사활동이다. 높은음자리(�s)는 마을의 형태가 이와 비슷해서 붙인 이름이다.

◆컨테이너 박스·폐목 등 활용

안 교수와 제자들은 나뭇가지나 컨테이너 나무박스, 폐목 등을 이용해 친환경 조형물을 형상화키로 했다. 경비는 동서대에서 지원받고 산학협력 공동 프로젝트로 ㈜케이이엔씨와 ㈜영림목재로부터 조형물 기초골조와 나무재료 등을 지원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안 교수와 제자들은 디자인을 한 뒤 직접 톱질, 못질을 하고 조형물이 썩지 않게 오일스텐을 칠하는 작업들을 거쳐 높이 4.0m, 폭 2.4m의 고라니를 완성해냈다. 또한 6·25전쟁 참전·의료지원 21개 국가의 수도 등과 해마루촌간 거리를 명기한 이정표도 세우고 벤치도 5개 설치했다.

지난해에는 마을입구 펜스와 창고에 고라니가 뛰어노는 모습을, 마을회관에는 아이들이 즐겁게 탁구를 치는 모습도 그렸다.
 

▲ 고라니는 해마루촌의 펜스에서도 놀고 있다. /동서대 제공

정재겸(66) 이장은 "해마루촌이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을로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며 "마을 사람들도 모두 마을 분위기가 살아 정말 좋다고 한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에 참여한 김동욱(26·시각디자인과 3)군은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공공 디자인의 기초를 세우고 싶었다"며 "학생들도 현장경험을 통해 디자인 실력을 향상시키고 봉사도 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안 교수와 학생들은 내년에는 다양한 형태의 고라니 조형물과 벤치를 마을 곳곳에 설치할 계획이다. 여건이 된다면 마을입구에 설치한 유형의 고라니 조형물을 6·25참전 21개 나라의 수도에 설치하는 목표도 갖고 있다. 안 교수는 "이렇게 되면 고라니 조형물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 현장으로부터 세계로 보내는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세계적으로 의미있는 평화의 설치미술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반도 남단의 대학 교수와 학생들의 지속적인 디자인 작업을 통해 민통선 최북단의 실향민 마을이 작은 평화공원으로, 또 평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디자인 마을로 바뀌고 있다.

☞해마루촌은…민통선내 실향민 정착촌, 현재 60가구 150여명 거주

해마루촌은 통일촌, 대성동마을에 이어 지난 1998년부터 조성된 실향민 1세대를 위한 정착촌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로 10만여㎡ 규모로 조성된 곳이다. 현재 60가구 150여명이 살고 있다. 이중 70세가 넘은 사람이 37명에 이른다.

해마루촌 행정지명은 동파리(東坡里)인데 첫 발음을 세게 할 경우 썩 유쾌하지 않기에 동쪽에서 뜨는 '해'와 고개(坡)를 의미하는 '마루'를 엮어 해마루로 지었다고 한다.

해마루라는 이름만큼이나 마을의 형상도 매우 이색적이다. 하늘에서 보면 마치 '높은 음자리표'를 보는 듯 마을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콩, 들깨, 인삼 등을 재배하고 있다. 해마루촌이 처음에 조성될 때 터를 닦다가 수백발의 '지뢰'가 발견되었는데 포클레인 삽이 폭발로 날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정재겸 이장은 "주민 50%가 태양광을 이용하는 그린 마을인 해마루촌은 녹색농촌체험마을 및 팜스테이 마을로 지정되어 도시민들이 언제든 방문하여 DMZ 및 농촌체험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의 (031)952-9127, 홈페이지 www.haemaruchon.com

오경환 기자 khoh@chosun.com

기사입력 : 2011.07.11 23:26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