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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시각

'2010 F/W New apple' 예뻐서 어떻게 먹을까

농부·디자이너 손잡은 '디자인 사과' 광화문 원 갤러리에서 론칭 겸 전시

이봉진(41)씨는 경북 봉화에서 사과 농사, 머루 농사를 짓는 농부다. 서울에서 10년 넘게 사업하다가 2년 전 홀라당 말아먹고 고향 봉화로 귀농해 봉화농원을 차렸다. 늦게 배운 농사,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하지만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게 있었다. 유통구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과일을 생산해도 수중에 떨어지는 이익은 얼마 안 됐다. 고심 끝에 그가 선택한 건 '디자인'이었다.

무덥던 지난 여름 촉망받는 디자이너 이장섭(32)씨를 만났다. 그리고 사과가 단단하게 여물기 시작한 늦가을 그들의 협업이 '파머스파티(farmersparty)'란 브랜드로 결실을 보았다. 사과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디자인을 입었다. 투박한 누런 사과 박스, 대나무 엮은 과일 바구니 대신 돈 주고 사고 싶을 만큼 앙증맞은 박스<사진>, 자작나무 곱게 잘라 만든 상자를 내놓았다.

이 '디자인을 만난 사과'는 소비자를 처음 만나는 방식도 별나다. 미니스커트 입은 내레이션 모델도, 전단지도 없다. 지금 서울 광화문 복합문화공간 C스퀘어의 원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디자인 전시 '파머스파티'가 이들의 브랜드 론칭식이다. 농부와 작가는 사과 박스와 사과를 실은 자전거 수레를 전시하는 방식을 택했다.


▲ 디자인을 매개로 만난 농부 이봉진(오른쪽)씨와 디자이너 이장섭씨.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23일 만난 작가와 농부는 "농민들이 정당한 대가를 못 받는 유통구조를 디자인으로 옆차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도 농부가 디자인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았을 테다. 이봉진씨는 "도시에서 소비자로 살던 경험을 살려 소비자의 눈으로 차별화 아이디어를 생각하다가 디자인으로 브랜드 마케팅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정부나 대기업에서 하는 디자인과는 수준이 다르겠지만 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유명 카드회사, 맥주회사 등 대기업의 브랜딩 작업에 주로 참여했던 이장섭씨는 이봉진씨더러 "이제까지 만난 최고의 고객"이라고 했다. "첫 미팅 때 프레젠테이션을 들은 뒤 최종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완벽하게 제게 일임하셨어요." 창의력이 극대화될 수 있었다. 햇사과에 패션상품처럼 라벨을 붙였다. 요즘 나오는 사과는 '2010년 F/W New apple'이다. '리미티드 에디션'도 있다.

이들이 내건 슬로건은 'Made in Korea'. 목표는 소박하면서도 원대하다. '사과 많이 파는 것'. 다음달 초 이 꿈에 시동을 건다. 이장섭씨가 원갤러리 안에 전시된 자전거 수레를 타고 광화문 일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예쁜 포장에 담긴 사과를 나눠줄 예정이다. 정확한 날짜·시간·장소는 트위터(twitter.com/farmersparty)와 홈페이지(www.farmersparty.co.kr)로 공지할 계획이다.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입력 : 2010.11.2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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