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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세계의 소프트시티를 가다] <24>함마르비

[세계의 소프트시티를 가다] <24>함마르비-신재생 에너지로 일군 친환경 거주지
쓰레기로 난방하고 오수로 차 굴리고… 도시와 호수, 살아나다

함마르비= 글ㆍ사진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함마르비 주민들이 호수 건너 스톡홀름 시내로 가는 연락선을 기다리고 있다. 이 지역에서 배는 버스나 전차만큼 친숙한 대중교통 수단이다. 
 
 
중금속으로 오염된 쓰레기 매립지
15년 만에 '살고 싶은 도시'로

건물 입구 구멍에 쓰레기 넣으면
지하파이프 통해 중앙 수집소로…
필요 에너지 30% 이상 충당

버스·연락선 등 교통망 잘 갖춰
도로에는 차 거의 볼 수 없어
카풀 제도도 차 줄이는데 한몫

화석 에너지의 고갈과 환경오염에 대비해 미래의 에너지로 각광받는 신재생 에너지. 흔히 신재생 에너지라면 태양열, 풍력, 수력 등 큰 규모의 설비가 필요한 대체 에너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신재생 에너지는 사업장이나 가정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태워 만든 폐기물 에너지라는 사실을 아는지. 2007년 통계에 따르면 국내 신재생 에너지의 77%가 폐기물 에너지였다. 반면 태양열은 0.5%, 풍력은 1.4%에 불과했다. 국토가 좁고 기후 조건이 자연 에너지 개발에 유리하지 않은 탓이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 남동부에 위치한 '함마르비 셰스타드'는 쓰레기가 주요 에너지원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듯하다. 여기서는 각 가정에서 나오는 폐수와 폐열, 쓰레기 등을 자체 시설을 통해 정화한 뒤 에너지로 사용한다. 2000년 입주가 시작된 이 신거주지는 전체면적 2k㎡(60만 5,000평) 크기로 우리나라 행정구역상 동 크기보다도 작지만, 이곳에서 일어난 에너지 혁명은 스톡홀름 전체를 바꾸고 있다.

쓰레기 매립지가 '살고 싶은 지역'으로

스웨덴어로 호수를 뜻하는 '셰'와 마을을 의미하는 '스타드'를 결합한 이름처럼, 함마르비에서 호수는 지역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 운치 있는 호수변을 따라 늘어선 도서관과 레스토랑, 노인정 근처는 낮에도 주민들로 붐빈다. 저출산 문제를 극복한 나라답게 두 아이를 태운 유모차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맑은 공기와 풍부한 녹지, 아름다운 공공조형물까지 갖춘 이곳은 불과 15년 전만 해도 모두가 외면하는 외딴 동네였다. 조그만 호수 선착장에 드나드는 화물선과 크고 작은 공장은 물을 더럽혔고, 폐기물을 매립하는 통에 땅은 중금속으로 오염됐다. 1990년대 초반 스톡홀름 시가 처음 이곳을 개발하겠다고 나섰을 때, 고비용을 우려하는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실제로 개발 비용은 예상보다 6배 가까이 더 들었다.

그러나 지금 중산층 8,000가구(1만 8,000여명)가 살고 있는 함마르비는 스톡홀름에서 가장 '살고 싶은 지역'으로 꼽힌다. 조건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보통 61㎡(18평) 크기의 아파트가 약 6억원 정도로 스톡홀름 중심가와 맞먹는 수준까지 올랐다. 계속해서 오르는 추세다. 추가로 짓고 있는 함마르비 외곽의 아파트는 수요를 감안해서 건물 높이를 더 높일 예정이다.

쓰레기를 지하 파이프를 통해 중앙 수집소로 보내는 진공 흡입장치. 

생활 속의 신재생 에너지

"쓰레기로 난방하고, 오수로 차를 굴리죠." 아이 둘을 데리고 산책 나온 스티나 욘손(39)씨는 "시내에 살 때보다 난방비, 전기세가 50% 이하로 줄었다"며 "집은 비싸지만 대기가 맑고 차가 별로 없어서 아이들을 키우기 좋다"고 만족을 나타냈다.

그의 말처럼 함마르비는 에너지 절약형 친환경 도시다. 3중 단열창과 자원 절약형 실내 환기 시스템 등을 공통적으로 갖춘 건물은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한다. 여기에 각종 신재생 에너지를 실용화해서 화석연료의 사용도 줄였다.

일반 쓰레기를 태운 에너지와 하수처리장에서 나오는 열은 지역 내 난방은 물론이고 전력까지 생산한다. 음식물쓰레기와 오수에서 골라낸 찌꺼기는 바이오 가스로 변환시켜서 전차나 차에 휘발유 대신 넣는다. 처리된 찌꺼기는 비료로 쓴다. 쓰레기가 쓰레기가 아닌 셈이다. 건물마다 태양열 집열판이 있어 태양열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페트병을 넣으면 돈으로 돌려주는 기계. 동네 슈퍼마켓마다 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거리에 쓰레기통도 없앴다. 건물 입구마다 설치된 여러 개의 둥근 구멍이 쓰레기통 역할을 한다. 이곳에 넣은 쓰레기는 시속 70km의 속도로 진공 흡입돼 지하 파이프를 통해 중앙의 수집소로 보내진다. 수거 차량이 없으니 매연도 발생하지 않고, 인력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이를 고안한 엔박(Envac)이라는 회사는 한국의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도 같은 시설을 설치한 바 있다.

1996년부터 함마르비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스톡홀름시 지역계획과 변 세데르퀴비스트 과장은 "필요 에너지의 50%를 신재생 에너지로 충당하는 게 목표인데, 현재 30% 이상 달성했다"며 "이 추세로 20년이 지나면 초기 개발비용을 모두 환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중교통의 천국

함마르비의 도로에서는 버스 외에는 자동차를 거의 볼 수 없다. 보행자 전용도로는 차도만큼이나 널찍하고, 길에 서있는 자전거는 어림잡아도 차보다 많다. 함마르비는 처음 도시를 조성할 때부터 전차와 버스, 연락선 등 대중교통망을 잘 갖춰놓는 대신 주차공간은 2가구당 1대로 제한했다. 배가 전차나 버스보다 빨리 스톡홀름 시내를 잇는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이용되는 점도 독특하다.

누구나 필요한 시간만큼 차를 빌려 쓸 수 있는 카풀 제도도 자가용의 사용을 줄이는 데 한몫했다. 민간회사가 운영하는 카풀의 한 달 사용료는 350크로나(한화 5만7,000원). 높은 스웨덴 물가에 비해 굉장히 저렴한 요금이다(국내에서 3,400원하는 맥도날드 햄버거 빅맥은 스웨덴에서 7,900원에 팔린다).

이런 환경 때문에 스톡홀름시에 따르면 2010년 현재 함마르비에서 10가구 중 6가구 정도만 자가용을 가지고 있다. 이동수단의 52%는 대중교통이고 27%는 자전거 및 도보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비율은 21%에 그친다.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더 많은 함마르비 거리에는 자전거용 공기 주입 펌프가 흔하다. 

'심비오 시티'의 모델

함마르비는 에너지, 물과 하수 처리, 폐기물 처리 등 도시 운영의 3대 기능을 종합 관리하는 이른바 '심비오 시티(symbio-city) 모델'의 예로 손꼽힌다.

스톡홀름시는 함마르비의 성공에 힘입어 옛 군사기지나 구도시 등 7곳을 추가로 '포스트 함마르비', 친환경 거주지로 개발할 계획이다. 출산율이 높아 인구가 연간 1만 5,000명씩, 2030년이면 현재보다 15만명이 늘어날 것에 대한 대비책도 된다. 변 세데르퀴비스트 과장은 "스톡홀름이 2010년 제1회 유럽환경수도(Europe green capital)로 지정된 것도 함마르비의 공이 컸다"고 말했다.

공동체성을 살린 공간 디자인 덕분에 함마르비 주민들은 쉽게 이웃이 된다. 

서로 마주보는 'ㄷ' 자형 아파트… 정다운 커뮤니티 창조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하니 사람 사는 곳 같네요."

낙후지역인 스톡홀름 북서쪽에 살다가 함마르비로 이사 왔다는 주민 안나 마야뉘만(63)씨는 "예전 동네에서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도 없었고, 범죄도 많았다"며 "함마르비는 공공 공간이 많아서 이웃과 쉽게 어울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녹색 도시 함마르비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사회성 회복을 염두에 둔 공간 디자인이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냥갑 같은 아파트는 없다. 'ㄷ'자 형의 아파트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구조 때문에 주민들은 자연스레 이웃과 만날 수 있다.

스톡홀름도 1970~80년대에는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판상형(板狀形) 아파트를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웃과의 접촉을 줄이는 이런 구조가 개인의 사회성을 떨어뜨린다고 판단, 1900년대 초에 유행했던 중정형(中庭形)으로 다시 돌아가는 추세다. 녹지공간도 일렬로 나무만 심던 때보다 늘어났다. 스톡홀름시 지역계획과 변 세데르퀴비스트 과장은 "건축가는 물론 정치가들도 어떤 형태의 거주지가 인간의 사회성을 길러줄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하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온ㆍ오프라인 커뮤니티의 활성화는 함마르비에 친환경 시스템이 정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신재생 에너지의 활용은 인프라를 갖춘다 해도 주민들의 생활습관이 변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함마르비 초입에 위치한 '글라스휘스엣(GlashausEtt)'이라는 정보센터는 에너지 절약 교육을 담당하고, 최신 정보를 제공해왔다. 8년 동안 성공적으로 운영된 이 센터는 스톡홀름시의 새로운 친환경 프로젝트인 '로열시프트' 지역으로 확장 이동할 예정이다.

[인터뷰] 친환경기업 '옌휘센' 클라스 요한슨 홍보국장


"사람들의 체온·컴퓨터 등 역사내서 발생하는 열로 건물의 에너지 충당할 것"
쿵스브로휘셋 빌딩 내년 초 정식 오픈


클라스 요한슨 홍보국장

사람의 체온으로 난방을 한다? 공상과학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 얘기가 스톡홀름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스톡홀름 중앙역에서 100m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쿵스브로휘셋(Kungsbrohuset) 빌딩. 호텔과 사무실, 쇼핑몰이 들어설 13층 규모의 이 건물은 중앙역을 오가는 사람들의 체온과, 자판기나 컴퓨터 등 역사 내 각종 기기가 발생시키는 열로 건물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의 20%가량을 충당할 예정이다.

이 건물을 짓고 있는 스웨덴의 떠오르는 친환경기업 '옌휘센(Jernhusen)'의 클라스 요한슨(27) 홍보국장은 "쿵스브로휘셋의 정식 오픈은 내년 초지만, 벌써부터 스톡홀름 시민들이 선호하는 건물 2위로 뽑혔다"며 "외국에도 많이 알려져 최근 컨설팅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의 체온을 활용한다고 하면 공기 중의 열을 일일이 모은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원리는 일반 가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재활용하는 기존 열교환 시스템과 같다. 실내의 높은 온도를 낮추는 환기 장치가 내뿜는 열을 집하하는 것인데, 그 열로 데운 물이 난방을 담당한다. 요한슨 국장은 "냉장고 뒷부분의 열을 모은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면서 "다른 공간에서 얻은 열을 이동시켜 활용하는 것이 색다른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이 기발한 발상은 기술자들이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중에 나왔다. '유동인구가 하루 20만명에 달하는 중앙역의 남는 열을 어떻게 활용할 수 없을까'를 고민하면서 시작됐다. 옌휘센이 스톡홀름 중앙역을 비롯한 50여 개의 기차역을 소유한 철도관리회사의 자회사라 중앙역 자원을 쓰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중앙역에서 발생하는 열을 쿵스브로휘셋으로 이동시키는 설비에 필요한 펌프와 파이프 비용은 약 3,000만원밖에 들지 않았다.

5중창으로 단열 효과를 높인 쿵스브로휘셋 빌딩.

옌휘센은 쿵스브로휘셋을 건설하면서 본래 있던 건물의 95%를 재활용하는 것부터 자원 절약을 실천했다. 건강을 위협하는 5%정도의 폐기물만 매립하고 나머지는 저개발 국가에 주거나 다른 건물을 짓는 데 사용했다. 새로 짓는 건물은 다섯 겹의 유리로 둘러쌌는데, 겹마다 공간을 둬 보온을 강화했다. 금속 자재를 바깥에 적게 노출해서 열 손실도 낮췄다.

이 밖에도 옌휘센은 자전거 보관대와 샤워실을 마련해 자전거 출퇴근을 유도하는 등 다방면에서 에너지 절약을 꾀하고 있다. 요한슨 국장은 "다른 기차역은 유동 인구가 적어 같은 방식의 개발이 불가능하지만, 각 역의 옛 모습을 지키면서 주변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시설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입력시간 : 2010/11/17 16:47:35  수정시간 : 2010/11/18 14:3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