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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생명 퍼뜨리는 홀씨처럼…마음속 이상향 오르듯

상하이엑스포서 주목받은 건축디자인 

구본준 기자  

» 6만개의 아크릴 섬모로 표면 전체를 뒤덮은 파격적인 디자인의 영국관.   

세계 최대의 국가 잔치인 상하이엑스포(10월31일까지)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많게는 수천억원의 돈을 투입해 짓는 나라별 엑스포 전시관들은 각 나라 최고의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이 총출동하는 디자인 트렌드의 최전선 현장이자, 각국의 문화적 역량을 보여주는 경쟁 무대다. 전세계 건축 디자인계의 관심을 끌어모은 이번 엑스포 전시장에서 가장 호평받은 국가관은 영국관과 덴마크관이 꼽힌다. 이들 두 나라 전시관은 어떤 이슈들을 담아냈는지, 그리고 어떤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는지 전문가의 분석을 들어본다. 편집자주

영국관
아크릴섬모 6만개에 씨앗 넣어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대해 성찰

덴마크관
인어상 중심에 둔 나선형 구조 자전거 타고 관람 ‘색다른 전시’

올림픽, 월드컵, 그리고 엑스포. 세계 3대 이벤트다. 5년에 한번 열리는 엑스포는 인류가 진보의 역사에서 어디쯤 서 있는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응축된 시공간이다. 국가 단위로 참가하는 엑스포는 그야말로 각 국가의 총체적인 ‘수준’을 보여주는 종합경기와 같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각축이 운동경기 못지않게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건축의 수준은 정확히 문화의 수준을 반영한다고 믿는다. 엑스포에 참가하는 국가들이 저마다 최고의 국가관을 짓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그 성취의 수준이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나은 도시, 더 나은 삶’(Better City, Better Life)이라는 이번 상하이 엑스포의 주제는 평범한 듯 인상적이다. 자연과 도시, 인류의 미래, 환경, 에너지, 지속 가능한 발전, 기술의 기여와 같은 열쇳말들이 여의도 면적의 3분의 2에 이르는 드넓은 박람회장에 펼쳐져 있었다.

» 덴마크관은 나선형 구조 건물을 자전거를 타고 관람할 수 있게 동선을 디자인했다. 덴마크의 상징인 인어상을 상하이로 옮긴 기발한 아이디어로 세계적 화제가 됐다. 
 
스케일만큼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중국답게 이번 엑스포는 터 선정부터 남달랐다. 엑스포는 워낙 넓은 부지가 필요한 만큼 보통 도심 외곽 낙후지역을 개발하는데, 상하이 엑스포는 낡은 산업시설들이 있던 황푸(황포)강 부근 도심에 공간을 마련했다. 엑스포의 꽃인 국가관들은 상하이의 중심 푸둥(포동) 지역에 들어섰다. 개인적으로 ‘선진국형 국가관’에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고 본다. 국가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짓지만, 지역에 기반한 정체성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지역의 문화적 전통을 모티브로 삼는 것은 정체성을 드러내기 안전하지만 그만큼 진부해질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진부하거나 생뚱맞거나. 이 둘 사이 어디쯤에 많은 국가관들이 자리해 있다. 이것을 넘어서서 진정으로 창조적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국가 정체성과 함께 출발한 주제의식이 엑스포 전체 주제에 기여하면서 미학적 성취를 거두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면 ‘선진국형’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제가 강력한 메시지로 치환되고, 이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디자인 콘셉트가 도출되고, 여기에 모든 것을 집중해 이뤄낸 공간 조형의 미학적 성취는 감동적이다. 자신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대범함이다.
‘민들레 홀씨’라는 애칭을 얻은 영국관이 그랬다. ‘씨앗의 성전’(Seed Cathedral)이라 이름 붙인 중심 건물이 접어 만든 대지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이 성전은 6만개의 아크릴 섬모로 이루어져 있는데, 광섬유 필라멘트가 장착된 아크릴 관의 끝에는 다양한 씨앗 종자들이 ‘진짜로’ 들어 있다. 바람이 불면 7.5짜리 휘청한 섬모는 부드럽게 흔들리고, 구름이 해를 가리면 아크릴 섬모를 통해 외부의 빛이 들어오는 전시관 내부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픽셀 6만개로 뒤덮은 실내에 마이크로 세계와 매크로 세계가 교차하고, 생명의 근원과 미래가 공존한다. 나와 세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대한 고요한 성찰이 고인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공공공원을 만들었고, 세계 최초로 식물원을 보유한 나라, 녹지율이 가장 높은 런던이 수도인 나라. 영국의 정체성이 ‘씨앗’에 담겨 인간이 도시에서 어떻게 자연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지를 웅변하고 있었다. 
  

» 아크릴 섬모를 타고 들어오는 외부의 빛이 내부를 밝혀주도록 꾸몄고, 섬모 맨 끝에는 영국이 보유하고 있는 종자를 종류별로 일일이 집어넣었다. 
 
영국관이 시적이라면 덴마크관은 글쓰기 교본 같은 느낌이다. 전시관은 이중나선형 구조로, 덴마크 작가 예페 하인이 디자인한 보행자 도로의 벤치 겸 울타리인 ‘소셜 벤치’가 끝없이 이어지면서 변화하는 모습이다. 이 파빌리온은 건축 공간에서 움직임에 따른 장면 연출, 곧 ‘시퀀스’란 무엇인가를 교과서적으로 보여줬다. 중심에 만든 연못 위에 덴마크의 유명한 ‘인어상’을 실제 덴마크에서 가져와 전시했다. 관람객들은 먼저 인어와 인사를 나눈 뒤 자전거도로와 보행도로 중 하나를 골라 나선 구조를 올라가게 된다. 자전거를 타고 전시관을 관람하는 체험 자체가 전시이자, 소풍과 놀이터 체험이 동시에 구현된다. 길을 따라 건물 위로 나오는 순간, 하늘과 닿은 공간에서 새처럼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파란 물빛 위 인어상은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우리 마음속 동화 같은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다면 인류의 미래에는 구원이 있을 거야.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자연과 함께하도록 해.” 비약일까.

글ㆍ사진 김주원/인테리어 디자이너

기사등록 : 2010-10-22 오전 09: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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