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esign Trend/패션

청담동 명품 편집숍 “우린 ‘흔한명품’을 거부한다”

 
“지금 그 제품은 79만원입니다.”
무심코 집었다 황급히 내려 놓았다. 소재와 착용감을 차치하고 겉만 본다면 거칠게 짠 스웨터일 뿐인데. 처음 보는 브랜드라 보세 제품이려니 했는데 큰일날 뻔 했다. 여기는 생소한 명품 브랜드만 모아 파는 명품 편집숍이란 걸 잠시 잊었던 탓이다.
■대기업도 탐내는 노른자위 시장
명품 편집숍은 말 그대로 온갖 브랜드의 명품을 모아 파는 곳이다. 기존의 명품숍과 차별화하기 위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해외에서 지금 막 뜨고 있는 제품을 들여오는게 특징이다.

패션 업계는 해외에서 유행한 아이템이 국내에 안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통상 1년으로 본다. 최근에는 각종 해외 드라마와 여행 등으로 이 시간이 절반쯤 줄었다.
하지만 명품 편집숍은 이 시차를 ‘0’에 가깝게 좁혔다. 바로 지금 파리에서, 혹은 뉴욕에서 인기리에 판매되는 옷을 동시에 우리도 구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루이비통, 샤넬, 프라다 등 익숙한 명품에 질린 이들은 남들과는 좀 다른 걸 원한다. 그런 이들이 즐겨찾는 곳이 바로 여기다. 때문에 이곳의 아이템들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개성이 있다. 가격도 예상보다 훨씬 비싸다.
취급 브랜드도 생소하기 그지 없다. 알렉산더 매퀸, 크리스티앙 루부탕 등은 그나마 좀 익숙한 브랜드다. 알투차라, 하이더 애커맨, 프로엔자 슐러, 주세페 자노티 등은 상표를 봐도 읽기 버겁다.
처음에는 개인사업자들이 알음알음으로 들여온 물건을 가져다 팔던 수준이었지만 수요가 늘면서 대기업도 뛰어들었다. 2000년 신세계인터내셔널이 ‘분더숍’을 열었고 2008년에는 제일모직이 ‘10꼬르소꼬모’를 이탈리아에서 들여왔다.
■신세계인터내셔널 VS. 제일모직
지난달 30일 낮 12시 청담동 분더숍 매장. 이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고센과 마주한 이곳은 주차를 위해 줄지어 서 있는 차들로 주변이 북적였다. 월요일 낮부터 누가 올까 싶지만 들고 나는 사람은 1시간에 20명 내외로 결코 적지않다.
4층 규모의 이 건물은 세계적인 건축가 귀도 스테파노니가 설계했다. 내부 분위기는 고급 의상실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 깔끔하고 숨소리마저 내기 미안할 정도로 조용하다.
건물 전체에 수십명의 손님이 있는데도 묘하게 엇갈리는 동선 덕에 쇼핑하기 좋다. 분더숍은 통상 100여개의 브랜드를 취급하지만 브랜드마다 갖춰놓은 제품은 10개 이하다.
A브랜드의 가격을 예로 들면 기본 스타일의 정장바지가 125만원. 여기에 어울릴만한 검은색 재킷이 205만원이다. 아래 위로 한벌을 장만하려면 330만원가량 든다. 누군가에게는 깜짝 놀랄 금액이겠지만 여기에선 평범한 수준이다. 청담동 패셔니스타들이 즐겨 찾는 덕에 올해에만 300억원가량의 매출을 바라보고 있다.
이곳에서 도보로 10여분 떨어진 ‘10꼬르소꼬모’는 제일모직이 운영하는 명품 편집숍이다. 1990년 이탈리아 밀라노에 첫 매장이 들어섰고 서울 매장이 두번째다.
설립자인 칼르라 소차니가 갤러리스트이자 출판인이었기에 10꼬르소꼬모의 문화적 자양분은 남달리 두둑하다. 이곳은 단순히 옷과 신발, 가방을 파는 곳이아니라 화장품, 향초과 함께 서적과 음반, 화보까지 취급한다.
이곳에는 도도하고 시크한 명품 대신 밝고 톡톡 튀는 명품이 많다. 물론 가격도 비싸다. 이를테면 딱풀처럼 생긴 어린이용 비눗방울 장난감이 3만원, 기본 스타일의 옥스퍼드 셔츠가 30만원 이상 이런 식이다. 3000만원을 훌쩍 넘는 모피코트도 걸려있다.
10꼬르소꼬모에서 찾아야 할 것은 ‘필요’가 아니라 ‘의미’다. 탁상시계를 60만원가량 주고 사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투정하려면 이곳에 와선 안된다. 모든 상품에는 ‘어떤 디자이너가 언제 만들었는지’에 관한 설명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분더숍과 10꼬르소꼬모 모두 착장 인심은 후하다. 두 곳의 의류 매장 모두 ‘입어보시라’며 권하는 분위기인데 중저가 브랜드조차 매몰차게 거절하는 니트류나 몸에 달라붙는 티셔츠도 얼마든지 입어볼 수 있다.
/wild@fnnews.com박하나기자
■편집숍=여러 브랜드의 제품을 한곳에 모아놓은 선진형 매장을 말한다. 감성을 중시하며, 가치중심 소비를 지향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한다.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