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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현대차 디자인, 실패작인가 성장통인가

ㆍ물 흐르는 듯 유연함 강조
ㆍ‘플루이딕 스컬프처’ 신개념 쏘나타 등 주력 차종 도입
ㆍ미서 호평 속 국내선 외면… 현대 “타사 신차 효과 탓”

현대자동차가 도입한 새로운 차체 디자인인 ‘플루이딕 스컬프처(Fluidic Sculpture)’가 국내 고객들에게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새 디자인이 적용된 신형 쏘나타와 아반떼, 투싼ix가 경쟁사 모델에 비해 판매 실적이 시원찮기 때문이다. ‘글로벌 메이커’로 도약하기 위한 현대차의 첫 도전인 ‘디자인 혁명’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0일 현대차에 따르면 ‘플루이딕 스컬프처’는 물 흐르는 듯한 유연함을 자동차 디자인에 도입한 일종의 패밀리룩 개념이다.

지난해 9월 선보인 신형 쏘나타와 8월 판매가 시작된 신형 아반떼에 처음 적용됐다. 아반떼는 공기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강조했다. 쏘나타는 난초의 유연한 곡선미를 모티브로 삼았다. 투싼ix와 올해 말 선보일 신형 그랜저도 모두 플루이딕 스컬프처가 적용됐거나 될 예정이다.

양승석 현대차 사장은 지난달 아반떼 설명회에서 “현대차의 디자인 철학인 플루이딕 스컬프처는 앞으로 현대차의 패밀리룩이 될 것”이라면서 “준중형 이하 차량에도 이 개념을 과감하게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가 플루이딕 스컬프처를 도입한 것은 독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선두업체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현대차 고유의 이미지나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페라리와 포르쉐, 벤츠나 BMW 같은 세계적인 명차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디자인을 갖고 있다. 이런 고민에서 나온 결과물이 플루이딕 스컬프처다.

문제는 현대차의 새로운 디자인 콘셉트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이다.

신형 쏘나타는 지난해 10월과 11월 각 1만7000대 이상이 판매됐지만 판매량이 점차 줄고 있다. 올 6월에는 9957대로 1만대 이하로 떨어졌다. 지난달에는 8469대를 팔아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7월부터 판매를 시작한 신형 아반떼도 월 1만6000대 이상 판매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7월과 8월 두 달 합계 판매량이 1만7000대 수준에 그쳤다. 투싼도 지난달 3714대를 팔아 지난해 12월 7804대보다 절반가량 줄었다.

쏘나타나 아반떼는 엔진이나 변속기 성능, 각종 편의장치가 경쟁사 동종 차량에 비해 우수하다는 평가다. 성능이 좋은데도 르노삼성 SM5와 SM3, 기아차의 K5나 스포티지 판매량이 현대차를 앞선 것은 결국 디자인 문제로 귀결된다.

구상 한밭대 교수는 “미국시장 중심의 디자인 전략을 선보인 현대차는 미국에서는 주목을 받았지만 국내 소비자들은 현대차의 새로운 디자인을 아직 편안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플루이딕 스컬프처라는 디자인 개념이 잘못된 게 아니라 실제 자동차 디자인에서 실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신형 SM5를 구입한 이시영씨(39·자영업)는 “쏘나타를 살 생각이었지만 사나운 인상의 전면 디자인과 뚱뚱해 보이는 측면 스타일, 장난기가 섞인 테일램프가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 같아 SM5를 샀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생각은 약간 다르다. 디자인이 잘못돼 판매가 줄어든 게 아니라 경쟁차량의 신모델이 쏟아지면서 신차 효과가 빠르게 감소한 것이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현대차의 새 디자인 개념이 실패했다고 말하기는 이르다는 얘기다.

현대차 관계자는 “과거에는 외국 선진 업체들의 디자인을 벤치마킹해 왔다면 이제는 현대차 고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또 “쏘나타가 매월 8000대에서 1만2000대까지 팔리고 있고 세계 시장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어 새로운 디자인 개념을 포기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현 기자
입력 : 2010-08-10 21:57:52수정 : 2010-08-10 23: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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