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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시각

[Who] 색 디자이너 1호, 최영섭 머크 컬러디자인센터 소장

"제품은 색으로 말한다" 그는 컬러 승부사
머크가 직접 만든 안료로 산업에 맞는 색 창조
홈씨어터·자동차 등 '최영섭 표' 색 만나 히트

국내 컬러디자인의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최영섭 머크 컬러디자인센터소장이 경기평택 포승공단 내 사무실에서 자동차 모형을 들고 색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경기 평택 포승공단에 있는 독일 화학기업 '머크'의 컬러디자인센터. 자동차 모양을 본 떠 만든 소형 케이스 수 백 개가 갖가지 색을 입고 빼곡히 들어차 있다. 잠시 후 전시실 안의 작은 방에서 하얀 가운을 차려 입은 중년 남성이 또 다른 케이스를 들고 나타난다. "방금 또 하나의 색을 탄생시켰다"는 그는 케이스를 가리키며 "언뜻 평범해 보이는 진주 빛깔 같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수 십 가지 색으로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최영섭(47) 소장. 우리나라 컬러리스트(색 디자이너) 1호이다. 자동차, 가전 등 수 많은 제품의 색을 만들고 분석한다. 색의 원료인 안료를 가지고 색을 만들어 이를 국내 주요 제조 회사와 페인트 회사에 제공한다. 때로는 이들 회사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주제에 맞는 색을 찾아주고 외국에서 수입한 제품이 흠이 생길 때 똑같은 색을 알아봐 달라는 수리 회사의 부탁도 들어준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너무 멋진 색을 봤다'며 그 색을 만들 수 있느냐는 지인들의 황당한 부탁까지도 해결해 낸다.

'컬러 박사'라 불리는 그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군 제대 후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밑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다 우연한 기회로 페인트 회사에 들어갔다. 제품의 색은 원료인 안료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미술이 아닌 화학을 전공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회사의 판단이 그를 색의 세계로 이끌었던 것.

최 소장은 자동차 회사부터 전자회사, 오토바이 헬멧 회사까지 색이 필요한 모든 공장에서 몇 달씩 머물며 공정을 낱낱이 파악했다. 그는 "공정에 맞게 어떤 안료를 어떻게 써야 하는 지를 정확히 알아야 했기 때문이었다"며 "지금도 공정이 바뀔 때마다 내용 파악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5년 뒤인 1996년. 그는 지금의 머크로 회사를 옮겼다. 색의 원료인 안료를 좀 더 잘 안다면 그 만큼 색 제작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안료에 대한 전문 지식과 페인트 회사에서의 경험 등이 어우러져 색에 있어서 만큼은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히고 있다.

몇 년 전 와인색으로 히트를 친 LG전자의 홈씨어터, 최근 YF쏘나타, SM5에 쓰이는 반짝거리는 진주색, 에쿠스의 검은색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친 작품이다. 안료 회사는 보통 안료만 제공하고 제품을 만드는 회사와 페인트 회사가 이 안료를 활용해 색을 만드는 게 일반적인 반면 머크가 자신들의 안료로 직접 색을 만들어 제공하면서 경쟁력을 얻고 있는 데는 바로 최 소장의 역할이 크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설명. 심지어 페인트 회사와 제조 회사 실무자들 사이에 의견이 다를 때 그에게 '심판'을 맡기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최 소장은 "소비자가 제품에 대해 갖는 첫 인상은 바로 색에 의해 좌우될 만큼 산업에 있어 색은 매우 중요하다"며 "하지만 우리 정부나 기업의 인식 부족이 아쉽다"고 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만들 때 중도(중간에 색을 입히는 것), 상도(마지막 표면에 색을 입히는 것) 등을 거치는 데 미국, 유럽, 일본의 자동차 회사는 중도도 색 마다 별도 라인을 두고 진행하는 반면 우리 자동차 회사들은 밝은 색, 중간 색, 어두운 색 3개 라인만 두고 있다고 한다. 색 마다 라인을 두면 공간도 많이 필요하고 비용이 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꺼려하고 있다는 것.

그는 "외국 회사들은 파란색 밑에 파란색을 입히지만 우리는 파란색 밑에 다른 색을 입히는 식"이라며 "우리 자동차 색이 외국 자동차와 비교할 때 어둡고 탁한 느낌이 나고 흰색 자동차가 긁히면 그 밑에 다른 색이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 소장은 "아무리 양념이 좋아도 결국 음식 맛은 사람 손에서 좌우되듯 색도 안료보다는 사람의 눈과 손에 의한 비중이 크다"며 "대부분 기업은 화학을 전공한 색 전문가를 별도로 두지 않은 채 디자이너에게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술의 색이 아닌 산업에 필요한 색을 가르치는 전문 교육 과정도 손에 꼽을 정도"라며 "관련 자격증도 만들고 해당 인력도 집중적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입력시간 : 2010/08/03 00: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