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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진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21〉대안적 시도 작가를 소모품 취급하는 시장 주류들에 대한 ‘소박한 항거’ 딘스타크 아벤트(Dienstag Abend) ‘딘스타크 아벤트(Dienstag Abend)’. 이름 그대로 화요일 저녁 하루 만에 시작되고 끝이 나는 독특한 형태의 전시라고 했다. 빈에 위치한 Ve.Sch(베쉬)라는 대안공간에서 작년부터 화요일마다 꾸준히 진행되어 오고 있는 행사다. 몇 달 전 참여 의사를 묻는 연락을 받고 바쁘다는 핑계로 미뤘다가 결국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수락한 터였다. 전시장의 규모가 크든 그렇지 않든 2∼3일의 짧은 준비 기간 만에 순발력 있게 장소특정적인 작품을 해냈다가 거둬야 한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매력적인 시도로 생각이 됐다. 베쉬의 운영자금 중 일부를 마련해주는 바. 나머지는 베쉬에 전시됐던 작품들. ves..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20> 열린 미술관, 닫힌 소통 작품이 관람객에 다가갈 수 있게 ‘올가미’를 풀어주시라 바다 건너서 찾은 대구미술관, 작품 주변 둘러싼 펜스에 당황… 설명문엔 ‘참여 통한 의미 완성’ 이해 못하는 사람들 무시하고 순번을 매겨 끊어 내려 한다면 미술은 혼자 남게 될지도 몰라 한국에 우후죽순으로 미술관이 들어섰다는 소식을 바다 건너 이탈리아에서 듣고 한국에 들어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터였다. 기회가 닿자마자 서둘러 흥미를 끄는 미술관 목록을 만들었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대구미술관이었다. 대구미술관은 건립 논의 후 개관까지 14년이 걸렸다.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연 1층의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공간, 어미홀이다. ‘품어내고 생성하는 장소, 자연의 모체를 뜻하며 어미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명명되..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19>작가노트 작품 감상에 작가의 안내는 정말 필요할까? 요즘은 여느 미술 전시장에나 긴 글이 벽에 붙어 있다. 입구에 깨알 같은 글씨가 적힌 안내서가 비치된 것은 물론 작품마다 다시 자세한 설명이 붙기도 한다. 작가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관한 글부터 작품의 제작 동기와 배경, 자세한 설명과 함께 평론가의 글과 큐레이터의 기획 의도가 쓰여 있을 테고,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이 친절하게 붙어 있기도 할 것이다. 스스로 이야기를 한다던 작품은 언제부턴가 읽고 들어야 하는 텍스트가 되었다. 전시에 글이 많이 쓰이면서 이제 작가가 쓴 글, 작가 노트의 활용도 필수적인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관람객은 작품 앞에서 보내는 시간만큼이나 텍스트를 읽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술전시회의 연간 평균관람 횟수..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서] <18> 쓰레기 예술 전통 예술작품의 미적 가치에 반기… 무의미 속에서 의미 찾기 “아니 작가라는 작자가 미술관에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갖다 부어 놓질 않았겠어! 아니 쓰레기 같은 작품이 아니고 진짜 쓰레기 말이야.” ◀‘압축된 자전거’(1970년 작, 세자르). 토스카나 피에트라산타에 있는 조각 작업장에서 들어선 노르웨이 조각가 크누트 스텐(87)은 그에게 안부를 묻는 사람들에게 흥분된 목소리로 하소연하듯이 외쳤다. 때는 1980년대 중반. 스텐은 10여 년째 그곳에서 청동과 대리석으로 조각작업을 해오고 있었다. 잠시 런던을 방문했던 그는 현대미술의 동향을 읽기 위해 예술계에서 그 명성과 권위를 자랑하는 테이트 갤러리에 들렀고, 쓰레기 더미가 작품으로 둔갑한 장면을 목격했다고 했다. 스텐은 쓰레기를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 서서] 〈17〉 키치, 거대한 메릴린, 미술 시장 욕망의 대상 상품화… 저속한 키치인가 아트 비즈니스인가 미국 시카고에 26피트(약 8m)에 달하는 압도적인 크기의 메릴린 먼로가 영화 ‘7년 만의 외출’에서 선보였던 그녀만의 상징적인 몸짓으로 치마를 펄럭거리며 들어섰다. 관광객이 몰려들어 치마 아래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줄을 서서 그녀의 다리를 어루만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이 조형물은 공식적으로 공개되기 전부터 ‘선정적’이고 ‘성차별적’인 조형물이라는 공격을 받으며 시선을 끌었다. 문제작은 슈워드 존슨 Jr의 ‘포레버 메릴린’이다. 사실 파이어니어 코트에 존슨의 작품이 들어선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광장의 소유주이며 이 전시를 후원하는 젤러 리얼티 그룹은 존슨의 또 다른 작품 ‘갓 블레스 아메리카’를 2008년부터 2010년 초까지 전시했고, ..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16〉 예술 지원 네덜란드 정부 무분별한 지원 ‘가짜 예술가’ 양산 “작품이 팔리지 않는 화가, 조각가는 그걸 나라에다 팝니다. 그렇게들 먹고사는 거죠.” 2004년 네덜란드에서 영화감독 테오 반 고흐를 이슬람계 청년이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네덜란드에서 40년째 살고 있는 오푸스데이의 사제 프란츠 다고스티노는 “이러한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분별한 국가적 지원에 있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에서 40년째 살고 있다는 그는 넉넉한 국가의 지원이 그것을 악용하는 예술가들을 무더기로 쏟아냈고, 그 예술가들에게 목표란 어떤 종류의 금기나 규칙이든 무너뜨리고 공격하는 것밖엔 없다고 했다. ‘J B 터너 트레인’(제프 쿤스, 1986년 작). 제프 쿤스는 당시 플래시 아트지의 디렉터 잔 카를로 폴리티에게 이 작품을 원..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15〉 베니스 비엔날레, 초대와 검열의 기준 권위에 대한 도전들 위기지만 명성만 따지는 상황 개선 효과 제54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89개 참여국 중 하나인 아제르바이잔공화국의 국가 전시관 오픈 하루 전. 초대 작가 중 한 명인 아이단 살라코바는 그녀의 출품작이 이슬람 윤리에 어긋나니 그대로 전시될 수가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몇 달 전부터 진행한 프로젝트잖아요. 제 작품이 어떤 내용인지 이미 다들 잘 알고 계셨으면서 왜 이제 와서 갑작스럽게 이러시는 거예요?” 지난해 9월부터 준비에 들어가 올해 4월 공식 웹 사이트와 카탈로그에 사진이 실리기까지 작품의 세세한 디테일을 기획팀과 논의한 작가로서는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공교롭게도 베니스 비엔날레 오픈을 하루 앞두고 아제르바이잔공화국의 대통령이 전시관을 방문했고, 그가 아이단 살라코바의 작품..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13〉 베니스 비엔날레, 누구를 위한 예술? 스가르비 이탈리아관 커미셔너 비엔날레 진행 논란 비평가·큐레이터 대신 문화계 인사 작품 선정토록 ‘예술은 우리 것이 아니다’ 마피아적 요소 배제키로 “아니 예술계가 무슨 마피아 조직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 올해 6월에 열릴 베니스 비엔날레 이탈리아관의 커미셔너로 선정된 비토리오 스가르비는 전시 준비과정에서 반대 의견에 부딪혀 그만두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 지난 5월 5일 드디어 전시의 구체적인 안을 발표했다. 2010년 커미셔너로 선정된 후로 지금껏 이탈리아관에 대한 이렇다 할 계획안을 내놓지 않고 비밀스럽게 꽁꽁 싸두기를 거듭해 자신만의 독선적인 비엔날레를 진행한다는 비판을 받아오던 터였다.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퍼포먼스 장면. 몸에 흰색 칠을 한 모델들이 시칠리아 바로크시대 조각..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11〉 공격받는 예술 작품 만들 때 실험정신·대중기호 접점 모색 바람직 얼마 전 워싱턴 국립 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던 고갱의 작품 ‘타히티의 두 여인’에 한 중년 여성이 달려들어 외설적인 이 그림을 없애야 한다고 외치며 작품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고 주먹으로 부수려는 시도를 했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사명감에 들떠 설치던 여성의 이름은 수잔 번스. 그녀는 고갱은 악마이고 그 그림은 불살라 버려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여러 이유로 많은 예술작품이 빈번한 공격을 받아왔다. 렘브란트의 유명한 그림 ‘야간 순찰’이 여러 번에 걸쳐 난도질을 당하거나 산(酸·acid)을 덮어썼고 미켈란젤로의 조각 ‘피에타’의 성모 마리아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는 자가 휘두르는 망치에 코와 눈이 날아가기도 했다. 오귀스트 로댕의 ‘생..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10〉 차용과 표절 “내 작품 무단도용 말라” “예술적 재구성일 뿐” 차용미술 둘러싼 ‘동상이몽’ “지금까지 예술가들의 권익을 위해 힘써 오신 분께서 제 이미지를 출처 표기도 없이 무단으로 사용하시다니 놀랍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사진가 모튼 비비는 자신이 찍은 사진 ‘다이버’가 콜라주 작품 ‘풀’에 사용된 것을 보고 로버트 라우센버그에게 정중히 서신을 보냈다. 하지만 라우센버그는 그동안 그가 작품에 삽입하거나 변형해 넣은 자신들의 이미지를 보며 행복감과 자부심을 느낀다는 내용의 감사 서신을 수없이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비비의 반응에 그 자신이 놀랐다는 의외의 답을 보내왔다. ◇패트릭 카리우의 사진집 ‘예스, 라스타’에 수록된 사진(왼쪽)과 해당 사진을 차용한 리처드 프린스의 ‘카날 존’ 작품. 2년 반을 끈 저작권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