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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서] <18> 쓰레기 예술 전통 예술작품의 미적 가치에 반기… 무의미 속에서 의미 찾기 “아니 작가라는 작자가 미술관에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갖다 부어 놓질 않았겠어! 아니 쓰레기 같은 작품이 아니고 진짜 쓰레기 말이야.” ◀‘압축된 자전거’(1970년 작, 세자르). 토스카나 피에트라산타에 있는 조각 작업장에서 들어선 노르웨이 조각가 크누트 스텐(87)은 그에게 안부를 묻는 사람들에게 흥분된 목소리로 하소연하듯이 외쳤다. 때는 1980년대 중반. 스텐은 10여 년째 그곳에서 청동과 대리석으로 조각작업을 해오고 있었다. 잠시 런던을 방문했던 그는 현대미술의 동향을 읽기 위해 예술계에서 그 명성과 권위를 자랑하는 테이트 갤러리에 들렀고, 쓰레기 더미가 작품으로 둔갑한 장면을 목격했다고 했다. 스텐은 쓰레기를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 서서] 〈17〉 키치, 거대한 메릴린, 미술 시장 욕망의 대상 상품화… 저속한 키치인가 아트 비즈니스인가 미국 시카고에 26피트(약 8m)에 달하는 압도적인 크기의 메릴린 먼로가 영화 ‘7년 만의 외출’에서 선보였던 그녀만의 상징적인 몸짓으로 치마를 펄럭거리며 들어섰다. 관광객이 몰려들어 치마 아래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줄을 서서 그녀의 다리를 어루만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이 조형물은 공식적으로 공개되기 전부터 ‘선정적’이고 ‘성차별적’인 조형물이라는 공격을 받으며 시선을 끌었다. 문제작은 슈워드 존슨 Jr의 ‘포레버 메릴린’이다. 사실 파이어니어 코트에 존슨의 작품이 들어선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광장의 소유주이며 이 전시를 후원하는 젤러 리얼티 그룹은 존슨의 또 다른 작품 ‘갓 블레스 아메리카’를 2008년부터 2010년 초까지 전시했고, ..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11〉 공격받는 예술 작품 만들 때 실험정신·대중기호 접점 모색 바람직 얼마 전 워싱턴 국립 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던 고갱의 작품 ‘타히티의 두 여인’에 한 중년 여성이 달려들어 외설적인 이 그림을 없애야 한다고 외치며 작품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고 주먹으로 부수려는 시도를 했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사명감에 들떠 설치던 여성의 이름은 수잔 번스. 그녀는 고갱은 악마이고 그 그림은 불살라 버려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여러 이유로 많은 예술작품이 빈번한 공격을 받아왔다. 렘브란트의 유명한 그림 ‘야간 순찰’이 여러 번에 걸쳐 난도질을 당하거나 산(酸·acid)을 덮어썼고 미켈란젤로의 조각 ‘피에타’의 성모 마리아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는 자가 휘두르는 망치에 코와 눈이 날아가기도 했다. 오귀스트 로댕의 ‘생..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9〉이익과 분배 거짓과 진실 ‘형이상학적 풍경의 대가’ 데 키리코 그는 왜 자신의 작품을 위작이라했나 “아, 이 그림은 제가 그린 게 아닙니다. 이건 얼간이나 속을 법한 가짜군요.” 화가가 본인이 그린 그림을 못 알아보는 일도 있을까. 나라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진품 판정을 내렸지만 정작 작가는 작품 앞에서 머리를 가로 저었다. 문제가 된 작품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이탈리아 광장’ 연작과 동일한 소재와 구성 형식이 있었고, 색이 조금 연해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연작의 다른 여느 작품과 다를 바가 없어보였다. 광장은 데 키리코가 1910년쯤부터 즐겨 그린 소재였다. ◇‘멜랑콜리’(조르조 데 키리코, 1912년 작). 데 키리코 이전의 많은 예술가가 그림이나 조각으로 아리아드네의 잠든 모습을 즐겨 묘사했었다. 데..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6〉예술 속의 소란과 싸움 작가와 이론가, 목적·접근법 차이때문 불협화음은 당연 1982년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장에서 오픈을 얼마 앞두고 작품 설치가 한창일 무렵 국제관의 커미셔너였던 프랑스 미술비평가 장 클레의 따귀를 후려친 이가 있었다. 이탈리아 화가 리카르도 톰마시 페로니였다. 톰마시 페로니는 쉰이 조금 안 되는 나이의 점잖은 화가였고 늘 깨끗하고 세련된 더블재킷 수트에 금 체인이 달린 조끼를 갖춰 입는 신사였다. 유년 시절 그가 그렸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작을 사람들이 실제 원작으로 착각했을 만큼 뛰어난 그림 테크닉을 자랑했던 작가였다. 그는 콧수염을 멋지게 다듬은 얼굴에 은으로 된 만년필을 가지고 다녔고 고전적인 스타일의 그림만큼이나 고풍스런 1700년대 빌라에 살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예의바른 중년 신사인 그..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4〉 장인과 예술가 예술 vs 실용… 서로의 영역 존중하며 상부상조 오래전 말 안장을 만들던 장인이 있었다. 안장 만드는 기술이 무척이나 뛰어났던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몇 세기에 걸쳐 만들어져오던 전형적인 안장이 아닌 ‘현대적’인 형태의 안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침 도시에서는 분리파 운동이 한참 벌어지고 있었는데 이 운동이 ‘현대적’이며, 개성 넘치는 예술적인 수공업을 주창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장인은 자신의 안장 중 제일 잘 만들어진 것으로 골라 들고 운동을 앞장서 이끌던 대학 교수를 찾아간다. “교수님, 이 운동이 추구하는 바는 소문으로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인데, 현대적으로 세련된 작업을 하고 싶어요. 교수님 보시기에 이 안장은 어떤가요?” ◇‘DING DONG BAT’(..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3〉앉을 수 없는 의자 2:아이러니 '앉기'의 실용 뒤에 숨겨진 신분·권력 덩어리째 전달 밀라노 출신의 예술가이자 디자이너인 브루노 무나리(1907∼1998)는 1945년 ‘짧은 방문을 위한 의자’를 선보였다. 3㎝의 호두나무 각목으로 짜여진 이 의자는 너비와 등받이 높이는 여느 의자와 다를 바 없지만 앉는 자리의 깊이가 20㎝로 정상적인 의자의 반도 채 안 되는 데다 45도 아래로 기울어져 있어 의자가 가져야 하는 편하고 아늑한 특징은커녕 제대로 앉기조차 힘들게 디자인됐다. 의자로서의 기능이 의도적으로 제거되어 예술 오브제로 변한 이 ‘짧은 방문을 위한 의자’는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 걸쳐진 가장 아이러니한 예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리트벨트의 ‘적청 팔걸이 의자’(1918년)와 몬드리안의 컴포지션 연작. 그런데 왜 의자인가. 의자는 사..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1〉 신경질적으로 서 있는 테이블 ‘테이블’ 이름 단 예술작품 가구로 사용 한다면? 요즘 예술에 대한 관심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미술관뿐만 아니라 상업 갤러리에서도 대관보다는 기획전시가 증가하고 있고, 대안공간이나 신진작가 양성 프로그램도 엄청난 속도로 생겨나고 있다. 예술을 직업으로 하지 않는 일반인에게도 이제 예술은 알아야만 하는 교양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고, 증권이나 부동산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새로운 투자 대상이 되었다. 물론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치우친 부분도 보이고 갑작스럽게 커진 미술 사랑에 덩달아 불어난 거품도 상당량 보인다. 하지만 미술을 전공하면 주위에서 밥 굶을 걱정을 해주고 상당수 개인 갤러리들이 대관비로 겨우 운영하던 때를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다.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는 예술의 의미를.. 더보기
세상에 한 대뿐인 車 "카~예술이네" 세상에 단 한 대밖에 없는 자동차가 있다. 자동차메이커가 감각적으로 디자인 옷을 입힌 ‘아트카’(Art Car)다. 아트카는 예술과 자동차의 만남인 셈이다. 자동차메이커 중 아트카의 대표주자는 BMW다. BMW는 세계적인 예술가들과 함께 1975년부터 자동차 예술작품을 만들어 오고 있다. 제프 쿤스 BMW 아트카 예술가들이 BMW 모델을 재창조한 아트카는 프랑스의 경매가이자 열렬한 레이서인 에르베 풀랭이라는 아티스트가 처음 구상했다. 이 발상은 1975년 친구인 알렉산더 캘더가 레이싱카인 BMW 3.0 CSL에 페인팅을 하면서 실현됐다. 예술과 모터스포츠의 공존 결과물인 이 자동차는 나중에 프랑스 르망 24 레이스에 출전했고, 자동차 예술에 자극을 받은 BMW는 아트카 컬렉션을 계속 실행에 옮겼다. BM.. 더보기
지도 예술, 권력과 상상력 사이 길 찾기 [지도, 예술이 되다] 지도와 인간의 관계, 사회가 공유한 세계관, 지도가 의미하는 것의 다양한 변주들 박성환 작가의 '화물짐, 접이식 다리 그리고 지도판', 2008~2009 지도, 예술이 되다 "이것은 눈으로 보는 지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상상하는 지도입니다. 손가락을 나무 지도의 틈새에 넣은 다음 그 굴곡을 느껴야 합니다. 그 굴곡을 느낀 다음에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해안선의 굴곡을 상상해야 합니다. 촉각과 상상력이 완벽하게 일치해야만 당신은 당신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소설가 김중혁의 단편 소설 에는 나무 지도가 등장한다. 에스키모들이 해안선의 모양대로 깎아 만든 것으로, 손으로 윤곽을 만지고 기억과 주변에 대한 인식을 동원해야 비로소 길을 내준다. 아니, 길을 경험하게 해준다. 지도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