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디자인 극과 극

입는 순간 노동이 시작된다 [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놀이동산 일하는 사람들이 입는 옷 vs 해녀들이 입는 옷 » 입는 순간 노동이 시작된다. 롯데월드 제공 옷에는 꿈과 노동이 있다. 똑같은 옷도 시간이 지나면 느낌이 변한다. 색이 바래고, 헐거워지고 애초 디자이너가 계획했던 옷은 자기만의 옷이 되어간다. 할머니가 남기고 간 푸른빛이 감도는 보라색 앙고라 스웨터는 점점 할머니의 앉은 자세를 닮아갔다. 고등학교 때 입었던 여름 교복은 사각사각 스치는 느낌 사이로 야간자율학습 시간의 더운 밤공기가 두텁게 담겨 있다. 애초에 기성복이란 존재하기 힘든 것 아니었을까. 인터넷 쇼핑몰, 동대문 패션몰, 청담동 편집매장처럼 옷을 살 장소는 너무도 많지만 어디에도 그대만을 위한 기성복은 없다. 기성복이란 에누리 없지만 딱히 정답도.. 더보기
셔터맨이 될 것이냐 병풍이 될 것이냐 [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셔터·병풍 똑같은 차단 기능…의인화땐 의미 확 달라져 » 셔터맨이 될 것이냐 병풍이 될 것이냐 셔터를 다시 보게 된 건 서울 을지로 3가에서였다. 모든 가게가 문을 꼭 닫은 일요일 오전이었다. 가게 주인들의 활발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을지로 거리의 주인공은 단연 셔터였다. 내린 후 불현듯 처마 끝이 다시 보이는 것처럼 평소 거리의 배경막에 불과했던 셔터가 유난스럽게 눈에 새롭게 들어왔다. 정수라의 노래 한 구절처럼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여요’ 느낌이 찾아왔다랄까. 셔터의 기능은 명확하다. 완벽한 차단이다. 안을 볼 수가 없다. 드릴로 구멍 낼 수도 없고 손가락으로 ‘뽕’ 창호지를 뚫을 수도 없다. 셔터(shutter)는 움직이는 벽 또는 문의 일종이다. 예전.. 더보기
희롱의 수단, 사랑의 도구 [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 우산: 모마 온라인스토어 제공, 부채: 윤운식 기자 부채는 이집트 시대부터 한여름 바람을 일으켰던 아주 오래된 사물이다. 조선의 왕은 한여름이면 도화서 화원들에게 부채에 그림을 그리게 해 신하들에게 선물했다. 여름이면 인사동 거리엔 각종 부채들이 쏟아진다. 옛 부녀자가 사용했던 ‘단선’ 모양의 둥근 부채부터 양반들이 손에 쥐고 다녔던 쥘부채, 파닥거리는 중국산 부채까지 모양새 또한 다양하다. 유난히 뜨거웠던 이번 여름 광고문안이 쓰인 부채를 길거리에서 두 번쯤 거부했다. 부채를 얕잡아 본 것이다. 부채 중에서도 접이식인 ‘접선’(쥘부채)은 더운 날씨와 뜨거운 가슴 앞에서 다층적인 변신술을 구사한다. 부채의 몸짓은 날개를 180도로 쫙 펴는 예쁜 공작새 같다. .. 더보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의자는? [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 극 » ‘자이로드롭’ 박미향 기자 디자인의 눈으로 본 대중목욕탕 의자부터 자이로드롭·사코 의자까지 극과 극의 비교 대상이 꼭 두 가지여야 하는 법은 없다. 불가사리 모양을 떠올리며 이번 극과 극은 네 개의 의자 디자인에 주목했다. 디자인 역사가들은 이름 있는 디자이너가 만든 ‘단 하나’의 의자에 관심을 갖는다. 미스 반데어로에의 바르셀로나 의자, 장 프루베의 대학 의자, 아르네 야콥센의 개미 의자까지 보기만 해도 눈동자가 커지는 매혹적인 의자들이 많다. 디자이너들의 의자는 유기적인 디자인 형태의 실험이자 자기 사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거울이다. 의자는 어떤 가구보다도 사람의 몸이 직접 닿고, 자주 의인화되는 사물이기도 하다. 유명 디자이너의 손길은 닿지 않았지만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