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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사람들

영국작가 오피…“거리의 군중에서 ‘아름다움과 에너지’ 느끼죠“

보행자 움직임을 고도의 감각적 안목으로 관찰해 압축하는 작가
도시적 삶을 규정하는 역동적 시스템 탐구.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동그란 얼굴에, 간결한 선으로 현대의 인물들을 표현하는 영국 작가 줄리안 오피((Julian Opieㆍ56). 그래픽 아트 같은 그의 작품은 한 번 보면 뇌리에 그대로 박힌다. 강렬한 임팩트, 그 자체다.

국내 모 카드회사 TV광고의 움직이는 LED 인물작업으로 우리와도 친숙한 줄리안 오피가 내한했다. 그는 오는 3월 23일까지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대표 이현숙) 2, 3관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서울 전시는 지난 2009년 이후 5년 만이다.

이번 작품전에는 영국 런던의 친구, 지인들을 단순하게 형상화한 신작과 함께 서울의 보행자를 촬영한 사진을 기반으로 작업한 평면회화가 나왔다. 또 사람의 두상을 3D스캐너를 통해 입체로 구현한 조각이 세계 최초로 공개됐다.

 

현대인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압축해내는 줄리안 오피의 신작. 서울 강남 가로수길의 젊은이를 표현한 회화 ‘Walking in Sinsa-dong’. 2014, Vinyl on wooden stretcher 220×233.6㎝ [사진=국제갤러리]

서울 신사동과 사당동 일대의 행인들을 포착한 회화는 한국팬의 시선을 잡아끈다.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 투영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의 사진가에게 의뢰해 보행자 사진 3000장을 건네받았다. 한국서 전시를 하니 기왕이면 한국인을 다루고 싶었다. 그런데 사진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시민들이 너나없이 멋지게 잘 차려입은 모습이어서 말이다. 굽 높은 구두에, 특이한 모자를 쓰거나 액세서리를 걸쳐, 무슨 프로젝트에 참가 중인 듯한 느낌이었다. 아, 휴대폰에서 한시도 눈을 안 떼는 것도 공통점이더라. 런던 사진들이 어둡고, 그림자가 많은 데 비해 서울 사진은 밝음 그 자체였다”고 밝혔다.
 

줄리안 오피의 흑백 LED영상작품 ‘People2’ (square). 2014, 168×168×12㎝. [사진=국제갤러리]

작가는 새로 작업한 서울 연작 중 비오는 사당동을 표현한 작업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우산을 받쳐 들고, 거리를 바삐 오가는 이들의 모습이 무척 다이내믹해 매료됐다는 것.

오피의 단순하고도 현대적인 인물화는 인간의 정서를 절묘하게 포착해내는 강렬한 색채와 탁월한 선묘가 특징이다. 단순한 제스처에 톡 쏘는 색채를 보란듯 버무려냄으로써 감상자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줄리안 오피 ‘Walking in Sadang-dong in the rain’. 2014,Vinyl on wooden stretcher, 230×344.3㎝. [사진=국제갤러리]

작가는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든 잠시 멈춰 서서, 지나가는 군중들을 바라보라. 그들은 저마다 생각도 다르고, 갈 길도 다르지만 낯선 이들과 뒤섞이며 끊임없이 하나의 춤을 창조해낸다. 나는 그 모습에서 아름다움과 에너지를 느낀다”고 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에 해당되는 인물화는 일종의 ‘현대적 초상화’에 해당된다. 그는 캔버스에 물감으로 작업하지 않고, 최신의 테이프를 활용해 정교하게 작업한다. 대량생산과 대량소통을 위해 고안된 기술을 작업에 절묘하게 차용하고 있는 것. 
 

자신의 신작 회화 앞에 선 줄리안 오피. [사진=윤병찬 기자]

완벽한 형태와 마무리로 시크함을 뽐내는 오피의 회화는 현대의 도시인을 그대로 압축한 듯하다. 동시에 현대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평도 품고 있다. 화려함과 함께 자신만의 개념을 드러내고 있는 것.

오피는 “흔히들 군중사진을 그대로 옮겨 회화를 만드는 줄 아는데 전혀 아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수천장의 사진 중 각각 무작위로 선별돼 재조합된 것이다. 어떤 인물은 포즈가 독특해서, 어떤 인물은 디테일이 맘에 들어 선택된다. 인물을 정면이 아니라, 고대 이집트벽화처럼 측면으로만 처리하는 것도 내 작업의 특징이다”고 했다. 그는 과거 완벽한 원(圓)이었던 동그란 얼굴을 좀 더 사실적으로 바꿨다.

줄리안 오피 ‘Woman wearing black tights with her hands in her pocket’ .2013 [사진=국제갤러리]

작가는 평면회화와 함께 흑백 LED만을 사용한 애니메이션 신작도 선보이고 있다. 고도의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오피의 LED영상작업은 이번에 원색을 버리고, 흑백을 고집했는데 관객들로 하여금 행인의 움직임에 좀 더 집중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번에 오피는 인간의 두상을 표현한 대형 조각도 처음으로 공개했다. 신석기시대 토템을 연상케 하는 이 인물 조각은 농축된 레진으로 형태를 빚은 뒤, 페인팅과 동일한 방식으로 색채를 입혀 작업의 통일성을 꾀했다.

이렇듯 조각과 회화의 영역을 폭넓게 아우르며 후기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부상한 오피는 작업의 경쾌함 때문에 전 세계 주요 도시로부터 각종 공공프로젝트, 음악산업과의 협업 등을 꾸준히 제안받고 있다.

그는 “21세기의 예술은 세상과 끝없이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며 “사람들은 본다고 하지만 제대로 보고 있는 건지, 실재와 비실재의 간극은 무엇인지 탐색하는 게 내 작업의 요체”라고 강조했다.

현대인의 도시적 삶을 더없이 단순하게 버무려냄으로써 공공성과 세계성을 보여주고 있는 오피의 작품은 영국 테이트 런던 미술관, 미국 피츠버그 카네기미술관 등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02)735-8449

yrlee@heraldcorp.com

기사입력 2014-02-1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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