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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기타

미리 둘러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서울의 명물? 돈먹는 괴물?


도심 한가운데에 불시착한 우주선인가? 서울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번 출구로 나오면 공상과학(SF)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건축물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라크 출신의 세계적인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63)가 설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다.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DDP는 2006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동대문운동장을 헐고 ‘21세기 디자인 발신지’라는 기치 아래 짓기 시작했다.

7년간의 공사 끝에 오는 3월 21일 개관하는 DDP를 미리 둘러봤다. DDP는 대지면적 6만2692㎡, 연면적 8만6574㎡에 지하 3층, 지상 4층의 규모로 알림터와 배움터 등 5개 시설, 15개 공간으로 구성됐다. 총사업비는 4840억원(건립비 4212억원, 운영준비비 628억원)이 투입됐다. DDP는 세계 최대의 비정형 건축물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물결치는 곡선과 비대칭, 열린 구조로 이뤄졌다.

축구장 3배 규모인 외관은 크기와 디자인이 각기 다른 알루미늄 패널 4만5133장으로 덮여 웅장함을 더했다. 내부 디자인은 자하 건축의 특징을 고스란히 살렸다. 디자인박물관의 5개 기둥을 제외하고는 내부에 기둥이 없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출입문도 초고속으로 달리는 지하철의 창문처럼 비스듬한 형태이고, 천장의 조명도 우주선이 길게 꼬리를 남기고 가는 모습이었다.

각각의 공간은 부드러운 곡면의 하얀 벽체로 꾸려졌고, 공간을 잇는 동선도 부드럽게 연결됐다. 일반적인 건물과 달리 층수의 개념이 없고 수직과 수평 대신 곡선과 좌표를 중심으로 설계·시공된 것이 특징이다. 공간과 공간 사이를 빙 돌아가는 500m가량의 복도는 올레길이 조성돼 디자인 숲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건물 내부의 유일한 계단인 조형계단은 아래 위층을 동시에 볼 수 있게 꾸몄다.

하지만 동선이 너무 복잡해 헷갈릴 수밖에 없다. 옥상 잔디광장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어떤 공간부터 가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지하 2층에서 나와 외부 계단으로 올라가면 8개의 길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도 우왕좌왕하기는 마찬가지다. 내외부에 휴식공간이 별로 없고 거대한 지붕 위를 덮은 옥상 풀밭이 관리 문제로 시민들이 접근할 수 없게 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DDP를 둘러본 건축 전문가들은 “동대문운동장의 역사성과 주변 경관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건물”이라며 “앞으로 어떤 프로그램으로 콘텐츠를 채우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디자인박물관에서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 등 간송미술관 소장 문화재 80여점을 전시하는 등 다양한 개관 행사를 마련했으나 방대한 공간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가 과제다.

이정훈 조호건축 대표는 “완성도가 높고 비례감이 잘 표출된 건물”이라며 “기존 국내 건축의 위계와 형태를 없애버린 내부 공간은 시민들에게 매우 이색적인 체험을 안겨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유선형 디자인의 노하우를 한국 건축계가 얼마나 흡수했는지 의문이지만 누가 지었느냐를 떠나 세계에 어필할 수 있는 한국적인 프로그램 구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선현 디림건축 대표는 “동대문운동장에 얽힌 추억이나 역사적인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건물의 공공성이 부족하다”며 “세계적인 건축가와 특이한 형태의 건물에 묻혀버린 결과”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어떤 프로그램을 가지고 효과적으로 채우게 될지는 미지수”라며 “5000억 가까운 세금으로 지어진 공공자산이므로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지속적인 관심과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와 월간 건축문화 이경일 편집장 등 건축 관계자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각 분야 전문가, 주변 시장 상인,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좋은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괴물 같은 DDP가 한국 디자인문화의 신기원을 이루는 ‘보물단지’가 될지, 한 해 300억원의 운영비가 드는 ‘애물단지’로 전락할지 향후 운영콘텐츠 확보에 달려있다는 얘기다.

글 이광형 선임기자, 사진 강희청 기자 ghlee@kmib.co.kr  입력:2014.01.21 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