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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기타

눈물의 밥솥 광고?… 슬픈 이미지가 호감 만든다

[슬픔 감성 마케팅]
똑같은 물건 소비자 광고실험… 얼마에 사겠나 물어봤더니 슬픈 영상일 때 높은 값 불러
슬픈 드라마나 영화 뒤엔 잔잔한 광고가 주목도 높아… 발랄한 광고는 역효과 볼수도
"우울하고 고독하다고 느끼면 상품 구매로 상쇄하려고 해"

지난해 대중적 인기를 끈 MBC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의 20회 경연 중 청중평가 상위권(1~3위)을 차지한 곡들에는 비밀이 숨어 있다. 총 60곡 중에 '울다'라는 동사가 들어간 곡이 41.6%에 달하고, '눈물'이란 명사가 들어간 곡도 21.7%였다. 이 두 단어 외에도 '그리움' '이별' '상처' 같이 슬픈 감정과 연관된 단어들까지 확대해보면 여기에 속하는 노래가 무려 83%. 밝고 쾌활한 곡은 아무리 잘 불렀어도 순위에 들기 어려웠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할 정도다. 이런 결과는 각종 디지털 음원 사이트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곡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광고로 사람들의 슬픈 감성을 자극하면 해당 제품 판매에 도움이 될까. 제일기획이 직접 실험해봤다.

◇슬픈 배경음악 듣더니 더 비싼 값에 사겠다는 소비자들

제일기획은 온라인에서 20~40대 소비자 378명을 모집했다. 10개 문항으로 이들의 성향을 '슬픔' '즐거움' '중립' 그룹으로 나눴다. 슬픔 그룹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영화 결말은 슬픈 게 좋다"거나, "경쾌한 음악보다는 단조롭고 멜랑콜리한 편이 좋다"는 항목을 택한 이들. 슬픔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고독이란 말은 멋진 말"이라고 생각한 반면, 즐거운 그룹의 사람들은 "고독은 왕따란 말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만큼 상반된 성향을 보였다.

이들에게 평범한 의자 한 개를 판매하는 척 동영상 광고를 만들어 보낸 뒤 얼마에 살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카메라가 의자를 비출 때 동영상 A의 배경음악은 경쾌한 것으로, B는 심각하고 우울한 것으로 제작했다. 그랬더니, 슬픔 그룹 사람들은 슬픈 음악의 동영상 광고(B)를 본 뒤 평균 6만1900원에 사겠다고 답해 최고액을 적어냈다. 슬픔 그룹이 경쾌한 동영상 광고(A)를 봤을 때는 평균 5만8500원이 나와 다소 떨어졌지만, 즐거움 그룹이 A와 B 두 동영상을 본 뒤 적어낸 금액(순서대로 5만5500원과 5만9100원)에 비해선 항상 더 높은 가격이 나왔다.


 미국 하버드대와 카네기멜론대의 공동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두 대학 연구팀은 슬픈 영화와 중립적 성격의 다큐멘터리를 각기 다른 그룹에 보여준 뒤, 이들에게 똑같은 물병을 얼마에 사겠느냐고 물었더니 슬픈 영화를 본 그룹이 다큐 시청 그룹보다 평균 3배 이상 물병 값을 높게 부른 것이다.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 조한상 프로는 "자신이 우울하고 고독하다 느끼는 사람들은 상품이나 서비스 구매를 통해 슬픔을 상쇄하려는 자아 보충 욕구가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슬픈 드라마나 영화 뒤에는 잔잔한 광고가 주목도가 높지, 슬픈 정서를 홀딱 깨게 만드는 발랄한 광고는 역효과를 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슬픔·외로움·고독함도 돈이 된다

동국제약은 여성 갱년기 치료제를 소비자들 머릿속에 각인시키기 위해 입대하는 아들과 엄마가 연병장에서 헤어지며 눈물을 쏟는 장면을 담은 광고를 내보냈다. 약의 효능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대신, 이젠 키워주신 고마운 엄마를 돌아볼 때라는 메시지를 전한 뒤 마지막에 제품 로고를 잠깐 띄웠다. 밥솥 브랜드 쿠쿠도 탤런트 원빈을 등장시킨 광고에서 원빈이 눈물 흘리는 장면을 연출했다. 압력솥 기능과 모델의 눈물 사이엔 연결고리가 없지만, 원빈의 눈물이 여성 소비자들 마음마저 짠하게 만들어 제품에도 호감을 느끼게 만들려는 전략이다.
 

▲ 쿠쿠 압력솥 광고는 ‘진정한 내면연기는 눈물마저 부드럽게 하듯…’이라는 설명과 함께 배우 원빈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쿠쿠홈시스 제공작심하고 슬픈 분위기를 연출한 광고도 있다. 밖에선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데, 머리가 젖은 한 젊은 여성이 울먹이며 밥숟가락을 억지로 입에 갖다댄다. '아세요? 가장 슬픈 건 행복했던 때를 기억하는 거죠'라는 자막이 흐르고 '사랑을 삼키다…내 마음의 소화제, 훼스탈' 글자가 뜬다. 한독약품 소화제 광고다. 마치 영화 예고편 같은 이 광고로 해당 제약사는 젊은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일본에선 이미 보편화된 '1인 식당' '1인 메뉴'도 국내에서 유행처럼 생겨나고 있다. 젊은이들이 밀집하는 서울 홍대 인근의 라면·우동집에 1인 테이블을 갖춘 식당이 있고, 강남에도 1인 스토브를 갖춘 고깃집도 등장했다. 고려대 인근에서 소형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씨는 "혼자 와서 쓸쓸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커피집이라는 이미지가 장사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며 "나이든 사람들은 혼자인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만 젊은층일수록 이를 즐기는 편"이라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ejkim@chosun.com | 기사입력 : 2012.03.04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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