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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시각

문화부장관상 줄 때는 언제고 이제와 폭력물?

웹툰 ‘살인자ㅇ난감’과 ‘옥수역 귀신’.

학생폭력 희생양?…또 ‘만화 때리기’
심의위, 유해물 지정 검토
일부 언론 폭력성 지적에
“청소년 모방 가능성 높다”
포털웹툰 24개 ‘19금’ 추진

27일 오전 8시30분, 서울 목동 방송회관 앞에는 뜻밖의 얼굴들이 모여들었다. <이끼>의 만화가 윤태호, 인터넷 만화인 ‘웹툰’의 간판 작가 강풀, 주호민과 김수용씨 등 인기 만화가 70여명과 만화계 양대 단체인 한국만화가협회와 우리만화연대의 조관제 김형배 회장까지, 만화계 주요 인물들이 총출동한 분위기였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가 이달 초 인터넷 연재만화인 웹툰 중 24개 만화에 대해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하기로 한 데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심의위가 있는 목동 방송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심의불가를 외쳤다. 심의위의 사과도 요구했다.

최근 사회적 관심사로 급부상한 청소년 폭력의 불똥이 만화로 튀고 있다. 지난달 일부 언론이 인터넷 만화의 폭력성이 도를 넘었다는 기사를 내보낸 뒤 심의위가 인터넷 만화의 폭력성 검토에 착수해 주요포털의 24개 만화를 유해매체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심의위 관계자는 “유해정보심의팀에서 안건 상정을 결정하면 이후 통신소위에서 지정 여부를 최종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해매체 판정을 받으면 포털 노출이 불가능해지고, 보려면 성인 인증을 받아야 한다. 심의위는 만화의 폭력성에 대한 검토는 청소년들을 위해 당연하다고 본다.

만화계 인사들 항의 집회
문화부상 등 상당수 우수
창작의 자유 기반 흔들려
‘청보법 파동’ 재연 우려

 

한국만화가협회 등 만화 관련 단체들이 꾸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반대를 위한 범만화인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7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 앞에서 방송통신심의위의 웹툰 심의 불가를 촉구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만화계에선 심의위가 유해매체 지정을 검토하는 만화들이 폭력을 위주로 하는 만화들이 아니고,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은 만화들이 상당수란 점을 들며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고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주는 문화부장관상을 받은 정연식 작가의 <더 파이브>와 지난해 ‘오늘의 우리 만화 수상작’인 <살인자ㅇ난감>, 그리고 외국에 소개돼 주목받은 <옥수역 귀신> 등의 작품들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또 24편 중 15편이 작가 스스로 19살 미만 구독불가 제한을 걸어 성인 인증을 받고 로그인한 성인 독자들만 보도록 하고 있는데 심의위가 유해매체 검토를 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심의위는 청소년이 접근하기 쉬운 인터넷 만화가 폭력성이 심하다는 언론 지적과 민원이 제기되어 채증작업을 벌였고, 그 결과 24개 작품에 대해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한 심의위 관계자는 “만화의 맥락과 무관하게 폭력이 난무하는 만화를 보고 청소년이 그대로 따라할 가능성이 높아 규제가 필요하다”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는 만큼 만화계에서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만화계 비상대책위원장인 윤태호 작가는 “다른 장르들의 폭력성에 대해선 별 대처를 하지 않아온 당국이 유독 만화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일이 되풀이되다보니 만화계로선 창작의 자유라는 기반이 흔들리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제는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만화계가 이번 논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1997년 만화계를 깊은 침체로 몰아넣었던 ‘청소년보호법(청보법) 파동’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당시 이현세 작가의 <천국의 신화>가 음란성 논란을 빚으며 사법 당국의 강경 대책이 나왔고, 청보법이 만들어지면서 만화산업 전체가 큰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다. 청소년 폭력이 만화에서 비롯됐다는 검증되지 않은 시선 때문에 만화가 애꿎은 희생양으로 몰리고 있다는 인식이다.

구본준 문현숙 기자 bonbon@hani.co.kr

등록 : 2012.02.27 21:40 수정 : 2012.02.27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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