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esign Trend/기타

[오피니언] 오후여담 디자인 코리아

김회평/논설위원

디자인은 사물의 겉모습이다? 최소한 스티브 잡스에겐 틀렸다. “그건 디자인의 의미와 정반대다. 디자인은 인간이 만든 창작물의 근간을 이루는 영혼이다.” 그 영혼이 결국 여러 겹의 표면들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2001년 나온 아이팟이 그 실례다. 잡스는 새 제품의 디자인부터 결정한 다음 그 안에 어떤 기술을 넣을까 고민했다. ‘형태는 기능을 따라간다’는 기존 문법을 ‘기능은 형태를 따라간다’고 뒤집은 잡스식 관점이다.

애플은 단순하면서도 사려깊은, 때론 천진난만하기까지 한 디자인으로 기존 통념을 깼다. 애플의 시장 장악력은 창의적 디자인의 소산이다. 소비자는 빼어난 외관의 제품에 기꺼이 웃돈을 지불하고, 그 기업까지 사랑하게 된다. 할리 데이비슨 엔진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애호가들을 떠올려 보라. 애플이 지난해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 소송의 칼을 빼들었을 때 주무기는 ‘트레이드 드레스’였다. 제품의 외관·느낌 등을 아우르는 유무형의 지적재산권, 한마디로 디자인 파워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도 명품 반열에 못 오른 결정적인 흠결은 디자인이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2005년 밀라노 디자인 전략회의에서 “삼성의 디자인은 아직 1.5류 수준”이라고 했다. 몇 년 새 반전(反轉)이 있었다. 지난 주말 삼성전자는 세계 3대 디자인 상 중 하나인 ‘iF 디자인 어워드 2012’에서 44개 상을 휩쓸었다. 2위는 소니, 디자인의 절대고수라는 애플은 5위다. 삼성은 최근 3~4년 간 이 대회를 석권했고, 다른 디자인 공모전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5년간 취득한 미국 전자제품 디자인특허는 애플의 6배에 달한다.

삼성이 2001년부터 운영해온 디자인경영센터엔 국내외 전문가 1000여명이 포진해 있다. 이들 중 15%는 철학·사회학·사학 등 인문학 전공자들이다. 로스앤젤레스·밀라노·런던·도쿄·상하이·델리에도 거점이 있다. 이들은 한 해 휴대전화 디자인만 550개를 쏟아낸다. 최근 히트상품 갤럭시노트는 엔지니어가 아닌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로 출발했다. 삼성뿐 아니라 현대·기아차, LG전자의 디자인 평판도 어느덧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다. 디자인 코리아의 파워는 미래를 내다보고 오래 매진해온 기업가정신의 결실이다.
 
게재 일자 : 2012년 02월 15일(水)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