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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박스카 전성시대…각 세워 디자인·공간 활용도 ‘와우!’

  
국내 자동차 시장에 완벽한 박스카가 등장했다. 주인공은 기아자동차의 레이(Ray). 박스카란 차체가 박스처럼 네모난 모양의 차를 말한다. 차체를 각이 지게 설계해 동급 차종보다 지붕이 높고 실내 공간도 한층 넓다. 뒷좌석을 접을 수 있어 다양한 형태로 공간 활용이 가능하다. 2008년 선보인 기아차 쏘울도 박스카로 분류되지만, 외관과 공간 활용성 측면에서 레이가 박스카 원형에 더 가깝다. 기아차는 2007년부터 프로젝트명 ‘탐(TAM)’으로 개발에 착수해 4년 동안 약 1500억원을 들여 이 차를 완성했다. ‘한 줄기 빛’이란 뜻의 레이는 ‘Open Your Life’ 슬로건을 내세워 소비자의 삶을 더 밝고 즐겁게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레이가 출시되면서 국내 박스카 경쟁은 한층 가열됐다. 현재 국내에 출시된 박스카는 쏘울, 큐브, 레이 3파전으로 압축된다.

원조 박스카는 닛산 큐브다. 가수 이효리가 타고 다녀 국내에선 ‘이효리카’로 유명세를 치렀다. 1998년 처음 출시됐고 현재 3세대 모델까지 나왔다. 올 8월 국내에 공식 출시된 3세대 큐브는 최고출력 120마력의 4기통 1800cc 엔진을 장착하고 무단변속기(CVT)를 적용해 주행성능을 높였다. 공인연비는 14.6㎞/ℓ로 경제성 면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

레이·큐브·쏘울 3파전

큐브는 박스카 원조답게 넓은 실내와 트렁크, 다양한 수납공간이 강점이다. 안정적인 주행을 돕는 차체 자세 제어장치(VDC)와 브레이크 잠김 방지 장치(ABS), 적재하중에 맞춰 앞뒤 바퀴에 적절한 제동력을 자동으로 배분하는 전자식 제동력 배분장치(EBD), 급제동 시 브레이크 압력을 조절해주는 장착형 브레이크 부스터(BA) 등 첨단 장치가 대거 탑재돼 안정성이 강화됐다.

국내 판매도 순조롭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첫선을 보인 8월에 416대 팔렸고 9월 439대, 10월 325대 등 그동안 총 1180대가 판매됐다.

국내 박스카 시장을 개척한 기아차 쏘울도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올 6월 큐브를 겨냥해 1600cc 직분사 엔진을 장착한 쏘울GDI 모델을 내놓았다. 기존에 140마력의 2000cc 엔진이 있었지만 쏘울GDI가 나오면서 단종됐다.

엔진 배기량은 큐브(1800cc)에 뒤지지만 GDI 엔진 덕분에 최고출력 140마력, 최대토크 17㎏·m로 동력 성능은 큐브를 앞선다. 연비도 15.7㎞/ℓ로 높였고 가격도 최대 1895만원으로 큐브보다 10% 정도 저렴하다. 신형 쏘울은 버튼 시동 스마트키와 전자동 에어컨, 멀티통합 룸미러 등 편의장치를 대폭 늘렸고 급제동 경보시스템과 전방 주차 보조시스템 등까지 갖춰 안전성도 높였다.

2008년 처음 출시된 쏘울은 지난해 국내에서만 2만2200대가 판매됐다. 올해 월 1500대씩 팔리다가 9월부터 판매가 다소 주춤한 상황. 8월 1534대, 9월 1328대에 이어 10월에는 1002대로 떨어졌다. 전월 대비 20% 넘게 감소했다. 내수시장 위축의 여파로 판매가 줄었다.

정연국 기아차 부사장은 “내수시장 위축으로 자동차 판매가 저조한 상황이다. 올해 연간 내수 규모를 162만대로 추산했지만 4분기 10% 감소하면서 157만대로 낮아질 것으로 본다. 내년 상반기에도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소형차인 프라이드 신형(10월)과 경차(쏘울과 레이)를 새롭게 선보인 데다 수출시장도 살아 있어 경기 영향을 덜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쏘울은 해외에선 승승장구다. 올 9월까지 미국에서 총 7만8669대가 팔렸다. 닛산 큐브(1만3652대)와 도요타 싸이언 xB(1만2974대)를 제치고 박스카 판매 1위에 올랐다.

동력 성능 큐브가 한 수 위

동력 성능만 놓고 보면 쏘울과 큐브가 레이보다 한 수 위다. 엔진 배기량을 보면 쏘울이 1600cc이고 큐브는 1800cc다. 레이는 1000cc로 경차인 모닝과 스파크(옛 마티즈)급이다. 레이에는 카파 1.0 MPI 엔진이 장착돼 최고출력은 78마력, 최대토크는 9.6㎏·m이다. 감마 1.6 GDI 엔진을 단 쏘울GDI는 최고출력 140마력, 최대토크 17㎏·m이고 큐브는 1800cc급 4기통 DOHC 엔진을 장착해 최고출력 120마력, 최대토크 16.8㎏·m를 보여준다.

하지만 연비나 경차 혜택을 고려하면 레이가 빛난다. 레이 연비는 17㎞/ℓ. 쏘울GDI 15.7㎞/ℓ, 큐브 14.6㎞/ℓ보다 경제적이다. 1000cc 미만 차량은 경차 혜택도 받는다. 차량 구입 시 취득세와 도시철도 채권 구입이 면제되고 고속도로와 혼잡 통행료, 공영 주차료 등의 감면 혜택이 주어진다. 가격은 쏘울GDI(가솔린 모델)가 1355만~1895만원, 큐브가 2190만~2490만원, 레이가 1240만~1495만원(가솔린 모델)이다. 공간 활용도도 레이가 돋보인다. 뒷좌석을 접지 않은 상태에서 옆으로 유모차를 접지 않고 넣을 수 있고 접이식 자전거도 두 대가 들어간다. 뒷좌석을 접으면 공간 활용은 더 극대화된다. 최대 1326ℓ까지 공간 확보가 가능하다. 라면박스 24개, 골프백 4개가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일반 자전거도 무리 없이 들어간다. 뒷자리 바닥 밑에 신발(시트 하단 수납 트레이)을 넣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운전석과 조수석 머리 상단에 별도의 수납공간(루프 콘솔)을 둔 것도 인상적이다.

가격에 대해 말들이 많다. 세 차종 가운데 가장 저렴하지만 고가 사양으로 갈 경우 쏘울GDI와 가격대가 상당히 겹치기 때문이다. 모닝 최고 사양과 비교해도 레이(기본사양)가 140만원 더 비싸다.

기아차 측은 “ABS는 물론 차세대 차체 자세 제어장치인 VSM과 6개의 에어백이 기본 장착됐고, 경사로에서 차가 뒤로 밀리는 것을 방지하는 HAC 기능, 뒷좌석 3점식 시트벨트와 열선 시트, 스티어링휠(운전대)도 있어 경차로선 최고의 안전·편의사양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가격이 비싸다는 지적에 대해 서춘관 기아차 국내 마케팅 이사는 “모닝에 비해 약간 비싸긴 하지만 다목적으로 활용도가 높은 데다 디자인과 편의사양이 우수해 소비자 모니터링 결과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았다”고 말했다.

앞으로 박스카뿐 아니라 1000cc급 경차와도 어떻게 경쟁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기아차 모닝과 쉐보레 스파크가 경쟁 차종으로 꼽힌다. 세 차종의 전장(3595㎜)과 전폭(1595㎜)은 똑같고 전고(차 높이)만 다르다. 스파크와 레이의 공인연비도 17㎞/ℓ로 똑같다. 다만, 가격은 스파크가 400만원(기본사양 기준) 정도 저렴하다. 레이 발표회에서 모닝과의 판매간섭(카니발리제이션) 우려도 제기됐다. 기아차에서 같이 생산하는 경차다 보니 서로 판매를 감소시키지 않을까 하는 지적이다.

잠깐용어 B필러리스
승용차의 지붕과 아래 차체를 연결해주는 기둥이 보통 3개가 있다. B필러는 앞좌석 유리와 뒷좌석 유리 사이의 기둥을 말한다. B필러리스는 이것이 없다는 뜻이다. 이밖에 앞좌석 백미러 쪽의 기둥을 A필러라고 하고 뒷좌석 유리와 뒤 유리 사이의 기둥을 C필러라고 한다.

레이 시승기
근거리·도심 주행 안성맞춤

레이는 경차로는 처음으로 뒷문에 슬라이딩 방식을 택했다. 조수석 뒷문을 승합차처럼 밀어서 여닫을 수 있다. 조수석 차문은 90도까지 열렸다. 이로 인해 차문을 열었을 때 실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내리기도 쉽다. 실내공간을 좌우하는 휠베이스(앞바퀴와 뒷바퀴 사이 거리)도 2520㎜로 모닝(2385㎜)과 스파크(2375㎜)보다 약 150㎜ 길다. ‘경차는 뒷자리가 좁다’는 선입견을 해소해줄 만하다. 영유아 자녀가 있는 가족과 큰 물건의 적재가 필요한 자영업자나 전문직 종사자에게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 활용도가 높아진 건 B필러리스(앞뒤 도어 사이의 기둥이 없는 형태, 잠깐용어 참조) 구조 덕분이다. 차의 조수석 문을 열면 앞문과 뒷문을 나누는 기둥(B필러)이 없다. B필러리스는 기아차가 레이 개발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다. 하지만 B필러가 없으면 차량 충돌 시 안전성이 떨어진다.

김형일 현대·기아차 프로젝트 매니저(부장)는 “기둥을 없애는 대신, 슬라이딩 뒷문과 조수석 앞문이 맞닿는 양끝에 수직 형태의 강성 빔을 넣었고 문도 고강도 철판을 사용해 기존 승용차와 동등한 강도를 유지했다”고 말했다. 기아차는 자체 시험에서 안전 1등급이 나왔다고 밝혔다.

주행 성능은 어떨까. 제주도 외곽 도로를 1시간 정도 달려봤다. 주행 가속력은 합격점. 급제동 후 가속 페달을 밟자 시속 100㎞까지 무난히 올라갔다. 하지만 그 이상 밟자 가속 소음과 차량 흔들림이 컸다. 시속 140㎞ 이상 밟기가 어려웠고 오르막길에서는 힘에 부쳤다. 네모난 차체 때문에 공기저항이 크고 1000cc 엔진, 78마력에 불과한 경차의 한계로 보였다. 코너링에서도 불안감은 남았다. 휘청거림 없이 차를 안정적으로 잡아주는 것은 VSM(차세대 VDC) 기술을 적용했다고 하지만 급커브에선 속도를 크게 줄여야 했다. 고속 주행이 불필요한 도심이나 근거리 주행에선 이런 단점이 거의 드러나지 않을 듯하다.
[제주도 = 김범진 기자]

[김범진 기자 loyalkim@mk.co.kr]

기사입력 2011.12.14 04:00:43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35호(11.12.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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