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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타이포그라픽 디자인

이동국 |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수석큐레이터

▲ 타이포그라픽 디자인 | 얀 치홀트·안그라픽스

신인류와도 같은 ‘타이포족’의 습격이 벌어지고 있다. 이유는 필자가 일하는 서예박물관에서 ‘동아시아 불꽃’ 주제로 열리는 <2011 타이포그라피 비엔날레>의 일일 유료관객이 900여명을 헤아리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100명을 채우기도 어려운 서예관에서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더 놀라운 것은 대부분 20~30대의 관객 분포에다 감상, 즉 작품과의 소통방식이 폰카나 디카와 같은 즉물적인 영상이다. 현장을 목도한 어느 노교수의 말마따나 ‘붓글씨의 시대가 끝났다고 봐야 한다’는 말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이것은 일상의 모든 문자와 영상이 디지털화된 덕분이지만 더 따지고 들면 타이포족의 대부 격인 얀 치홀트가 70여년 전에 뿌린 씨앗이 우리의 문자생활에도 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를 기준으로 신·구 타이포그라피의 역사가 갈라지고 있지만 그는 <타이포그라픽 디자인>(원제:Asymmertric Typography)에서 모든 타이포그라피의 출발점이자 신타이포그라피의 본질로 ‘명쾌함’을 들고 있다. 과거의 타이포그라피가 중축(中軸) 구성원리의 경직성으로 현대생활에 적합하지 않다면 신타이포그라피는 비대칭적인 기능성에 주목하여 과거의 배경효과나 사진까지도 메인과 같은 가치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근본 차이가 난다. 예컨대 여백을 검은 글자와 동일한 조형요소로 간주하고 있다. 이는 마치 동양의 문인화와 같은 원리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얀 치홀트 자신이 조선의 선비마냥 금욕적인 기능주의자의 태도가 드러나 있다.

하지만 요즈음 아무리 타이포족이 기승을 부리는 자판(字板)시대일지라도 타이포가 서예 본래의 미학을 대신하지 못하는 한 붓글씨족에게 시련은 있어도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입력 : 2011-09-15 21:30:53ㅣ수정 : 2011-09-15 23: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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