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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과 삶]인간의 탐욕이 가른 좋은 디자인과 나쁜 디자인

▲디자인과 진실…로버트 그루딘 | 북돋움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2001년 9·11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에 대해 저자 로버트 그루딘(73·미국 오리건대 영문학과 명예교수)은 디자인의 측면에서 원인을 제시한다. 이 쌍둥이 빌딩이 건축주인 뉴욕항만청의 과도한 욕심 때문에 주변 스카이라인과 어우러지지 못한 채 불쑥 솟아 있었고, 게다가 이슬람 사원 건축의 요소를 적용해 원리주의자들에게 심한 모욕감을 주었다는 것이다. 왜 이슬람 디자인을 가져왔을까 파고들어가면 건축가 미노루 야마사키가 젊은 시절,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공건축을 서구화하는 데 일조했으며 이 과정에 오사마 빈 라덴의 집안이 운영하는 건설회사도 참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중동 부호 집안인 빈 라덴 역시 혁명가가 되기 전에는 건축가였다.

이 에피소드가 전해주는 교훈은 디자인이 본래의 기능과 원칙을 벗어나서 허세와 미망에 물들 때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무역센터는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원주인인 록펠러는 초대형 부동산 개발을 통해 부동산 가치를 끌어올리고자 했고, 프로젝트를 이어받은 뉴욕항만청 관료들은 치적에 대한 욕심 때문에 당초 80층이던 설계를 110층으로 바꾸었다. 건물이 양적으로 팽창하는 동안 6개이던 비상계단은 3개로 줄면서 가운데로 몰려 테러가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비상구를 찾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9·11 테러는 미국과 중동, 기독교와 이슬람교라는 드러난 대립과 함께, 미국 자본주의의 모순이 쌓이면서 만들어진 참사였다.

저자는 좋은 디자인과 나쁜 디자인을 구분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소개한다. 20대에 런던에서 노튼 도미네이터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그는 코너를 돌다가 시트로엥 듀스쉐보 자동차와 부딪치는데 오토바이는 멀쩡하고 차가 부서졌다. 이는 순전히 디자인 때문이다. 노튼 도미네이터는 모양만 좋은 게 아니라 기능도 뛰어났다. 이에 비해 대중모델인 듀스쉐보는 외양은 그럴 듯했으나 약한 철판을 사용해 기능이 떨어졌다. 이런 점에서 최악의 자동차 모델은 포드 엣셀이다. 배기량에 비해 차체가 크고 과시적인 이 차에 대해 저자는 “사춘기에나 꿈꾸는 풍요와 오만한 권력의 모습”이라고 조롱한다.

20세기에 디자인을 보는 관점은 두 가지로 나눠졌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에트레 소트사스는 “선언, 즐거움과 위엄”이라고 디자인을 정의해 기능보다 아름다움을 앞세웠다. 반면 미국 디자이너 찰스 임스는 “기능의 표현이 형태의 가장 순수한 방식”이라는 입장이었다. 청교도들의 고향인 보스턴의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히피들의 본거지인 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로서는 후자에 끌리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장식과 기능이 반드시 반대개념은 아니다.

르네상스 건축물을 보는 관점에서 저자는 ‘불필요한 장식은 나쁜 디자인’이라는 선입견을 뛰어넘는다. 그는 점잖은 로마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나쁜 디자인으로, 마니에리즘(매너리즘) 유파에 속하는 줄리오 로마노의 ‘거인의 방’을 좋은 디자인으로 꼽는다. 베드로 대성당이 나쁜 이유는 세계무역센터가 그랬듯이 이 건물이 인간의 탐욕으로 덕지덕지 치장했기 때문이다. 처음 이 성당은 미켈란젤로의 산뜻하고 위엄있는 디자인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교황 바오로 5세가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을 지을 것’을 지시하면서 볼썽사나운 거인이 됐다. 반면 만토바의 궁정 ‘팔라테 초’에 있는 ‘거인의 방’은 당시 교황과 황제의 대립 속에서 교황이 상징하던 권력에 저항하는 발랄한 작품이다. 저자는 천정이 무너질 듯한 감각적 위협이 주는 새로운 감각에 주목한다.

마찬가지로 히틀러와 처칠의 그림을 비교해볼 수 있다. 미술학교 입학시험에 낙방한 이력이 있는 히틀러의 그림은 중세식 성벽에 둘러쳤으며 어두운 색채와 수직선이 강조됐다. 반면 그와 동시대인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맞대결했던 처칠의 그림은 인상파를 연상시키는 빛과 색채의 향연이자 수평선이 두드러진다.

저자에 따르면 좋은 디자인이란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것이다. ‘호모 파베르(도구를 만드는 인간)’로서 인간은 자연과의 접촉에서 도구를 만들었다. 조물주로부터 태어난 인간이 조물주의 입장이 되어 자신을 둘러싼 소우주를 창조하는 게 디자인이다. 그런데 문명이 발달할수록 디자인이 대면해야 할 환경은 자연에서 도시나 사회처럼 인공적인 것으로 바뀌어간다. 여기에 권력이나 시장이 끼여들면 디자인 환경은 급속히 왜곡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저자는 디자인을 창조와 동의어로 여긴다. 라틴어 동사인 ‘데시그나레(Designare)’는 표시하다·윤곽을 잡다·나타내다·지정하다·계획하다 등 다양한 뜻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은 단순히 외형의 꾸밈이나 고안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의 삶과 행위, 환경에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이자 결과물이다. 따라서 디자인에서 필요한 것은 명철한 지식이다. 저자는 지식을 기반으로 성공적인 디자인을 선보인 인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연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국 헌법을 기초하고 대통령을 역임한 토마스 제퍼슨을 꼽는다. 다빈치는 과학·의학·예술을 넘나들었고, 제퍼슨은 미국의 국체뿐 아니라 사저의 건축, 자신의 묘비까지 디자인했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디자인을 사회와 기업, 개인적 삶의 영역으로 다양하게 펼쳐나간다. 여기서 좋은 디자인은 사회적 에너지를 제대로 순환시키는 게 핵심이다. 미국 군수산업의 이해가 끼여든 국제정치는 이슬람 국가들과의 끊임없는 전쟁을 부추기고, 제대로 디자인되지 않은 회사에서는 의사소통의 흐름이 막혀 비효율을 초래한다. IT 기업 구글은 지식의 공유를 통해 새로운 부를 창출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방향을 바꾼 좋은 디자인으로 꼽힌다.

개인 삶의 디자인이란 대목에서 저자는 전공인 문학을 끌어들인다. 삶에서 디자인이란 미래를 계획하는 일임과 동시에, 과거를 정리함으로써 삶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인간은 누구나 과거의 경험과 기억, 상처를 ‘나의 이야기’란 서사로 만들어내는데, 특히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에게 과거에 대한 ‘좋은 디자인’이 필요하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 치료에서 꿈에 나타난 몇 가지 단서로 고통의 원인을 추적해 서사화함으로써 거기에서 해방되는 방법을 제시했다.

저자는 9·11 테러가 난 직후, 평소처럼 정신과 의사들을 상대로 서사에 대한 강의를 했다. 그때 그는 전대미문의 참사가 가져온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사가 필요함을 느꼈다. 그는 9·11의 원인을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나쁜 디자인으로부터 찾아냈고, 디자인에 대한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계속 확장되던 디자인에 대한 논의가 이 책의 처음 소재인 잘못된 도시 재개발사업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저자의 시각대로라면 이런 서술방법 역시 ‘디자인’이었을 것이다.

2010년 출간된 이 책은 한국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낙마로 좌초 위기에 놓인 ‘디자인 서울’ 사업에서 디자인이란 “도시브랜드와 산업경쟁력, 삶의 질을 높이는” 만병통치약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치장은 디자인의 본질인 창조와는 다르다. 해제를 쓴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씨는 “도시의 외형을 가리는 방편이 아니라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서의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제현주 옮김.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입력 : 2011-08-26 20:07:42ㅣ수정 : 2011-08-26 20:29:10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