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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패션

칼럼-재미있는 패션의 역사

[패션저널:강두석 편집장]예나 지금이나 옷은 사회적 신분의 표상이다. 패션이라는 현상이 남과 다른 나를 나타내기 위한 계급 의식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밥을 굶는 것은 남들이 모를 수 있지만, 입성이 부실하면 업신여김을 받는다는 속언은 오늘날에도 상당 부분 진실이다.

우리나라의 호텔에는 내국인의 경우 성장(정장)을 하지 않으면 출입을 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청바지에 티셔츠 하나 걸친 외국인들은 자유롭게 활보하는 우리 호텔에 우리 국민들은 꼭 성장을 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못사는 나라의 티를 내지 않기 위한 입성의 중요성을 잘못 강조한 사례이긴 하지만, 그만큼 의복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각을 절실하게 고려하는 요소임을 웅변하는 사례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패션 또한 과거에서 배우고, 배운 것을 확장한다. 흔히 역사는 반복된다고들 한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과거를 통해 현재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원인을 탐구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데 있듯이 패션의 역사 또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과거의 복식이 형태와 구성을 달리하며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상 최초 유행은 언제 생겨났을까? 옷이 단순한 가리개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던 고대에는 딱히 유행이랄 게 없었다. 그러나 중세로 넘어오면서 유행이라는 현상이 나타났다. 당시 유행을 주도했던 것은 부유한 왕족이나 귀족들이었다. 오늘날 매스컴의 세례를 받는 연예인들이 유행의 중심으로 부각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러다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면서 유행이라는 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는 시각이 많다. 십자군에는 각국의 병사들이 모였고 이들의 서로 다른 옷들이 사람들에게 패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외국의 의복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났고, 사치의 추구에 대한 욕망도 광범위하게 생겨났다. 또한 십자군 원정은 유럽이 동방의 직조와 염료 기술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다. 유럽의 패션이 진화하는 바탕이 된 셈이다.

십자군 원정 때 병사들이 허리끈에 매고 다녔던 앨모너(Almoner)라는 주머니가 있었다. 출정하는 병사들이 성직자들로부터 축성을 받은 십자가를 넣어 전승과 행운을 기원하며 지니고 다녔던 앨모너는 현대 여성들의 핸드백의 원형이 됐다.

중세에 귀족들이 착용하던 블리오(Bliaud)는 오늘날 블라우스의 원형이 됐으며, 지금도 여성들에게 사랑받는 망토는 이미 7세기 경에 등장했다. 또한 항상 모자를 착용하던 귀족들과는 달리 돈과 시간의 여유가 없던 평민들 사이에서 후드 티셔츠가 크게 유행한 것도 중세였다.

오늘날 여성적인 매력을 자연스럽게 나타내주는 요소로 인기가 높은 드레이프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됐다. 재단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전혀 없던 당시 사각으로 자른 천을 몸에 둘둘 휘감고, 그것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벨트나 브로치 등으로 여미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주름이 드레이프였다.

치마와 하이힐은 물론 스타킹과 가터벨트까지도 남성들을 위한 패션 아이템이었다면? 물론 사실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옷으로 지칭되는 치마는 고대 이집트에서 태동했다. 물론 사각의 천을 몸에 휘감은 것이 치마의 원형이었지만, 이것이 남성용 가리개로 출발해서 중세에 바지가 등장하면서 남자들이 대거 바지로 이탈(?)하게 되자 여성용 옷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하이힐도 중세에 나타난 패션 현상이었다. 당시 남자들에게 인기 스포츠였던 승마 중 안장의 발 받침대에서 발이 자주 빠져 곤란을 겪게 되자 발 받침대에 신발이 고정될 수 있도록 승마 부츠에 뒤꿈치를 달았던 것이 하이힐의 시초였다. 하이힐을 대중화시킨 것은 프랑스의 루이 14세였다. 근세까지도 유럽에는 화장실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길거리는 오물 투성이였다. 이 오물들을 피하기 위해 착안한 것이 하이힐이었다. 왕과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하이힐은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여성들에게도 전파되었다.

스타킹은 고딕 시대에 남성들의 상의가 짧아지면서 입기 시작한 쇼오스에서 유래했다. 가터벨트 또한 중세에 남자들의 흘러내리는 양말을 고정시키기 위해 개발된 것이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유행이 존재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여성들의 저고리 길이가 지속적으로 짧아진 이 유행은 기생 등이 주도했고, 일반인에게 널리 확산됐다는 것이다.

과거와 단절된 역사가 없듯이 패션에도 과거와 단절된 현상은 없다. 유행 또한 순환하면서 진화한다. 따라서 과거를 알면 현재를 알 수 있다. 지나간 것일지라도 쉽게 보아 넘겨서는 안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뉴스일자: 2011-07-21
[이 칼럼은 포스코신문(www.posco.com )에도 게재 됐습니다](패션저널&텍스타일라이프 ⓒ세계섬유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