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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내 ‘디자인’ 입은 사람들 보면 뿌듯해지죠

직업인에게 듣는 나의 전공
패션 디자이너 김선희씨
 

박창섭 기자   

꼼꼼하고 착실해야 하는 일이 있는 반면 미쳐서 푹 빠져야 잘 되는 일이 있다. 패션 디자이너도 그 중의 하나다. 엘지패션 김선희(37) 디자인실장은 스스로 “옷에 미쳐 산다”고 말한다.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1년 365일 옷만 바라보고 옷만 생각하고 산다.
“어느 직업보다 열정이 더 많이 필요해요. 송두리째 자신을 일에 매몰시키다 보면 무한한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분야가 패션 디자인이죠.”

그가 패션에 미치기 시작한 것은 고교 시절. 길거리 돌아다니며 사람들 입고 다니는 옷을 관찰하는 게 그의 취미였다. 당시만 해도 구하기 쉽지 않았던 패션 잡지들도 모조리 구해서 꼼꼼히 읽었다. 스스로 옷을 입어보며 연출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이었다.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해 디자이너는 그의 꿈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원대로 대학 의류학과에 진학한 그는 졸업 뒤 조그마한 의류업체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어 나산, 수페리어, 베이직 하우스 등을 거쳐 엘지패션에 안착했다.

김 실장은 청소년기부터 디자이너를 꿈꿔 왔고 결국 디자이너의 최고봉인 디자인실장까지 올라섰지만 디자이너의 직업이 결코 순탄한 직업은 아니라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배워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의류업체에 입사하면 일단 단추나 원단 등 기본적인 부자재를 구하러 시장을 돌아다니는 게 일이다. 소재나 컬러에 대한 기본 감각을 기르기 위해서다. 6개월~1년쯤 궂은 일을 한 뒤에야 본격적으로 디자인 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 때도 셔츠나 스커트 등 간단한 단품 디자인을 맡는다.

2~3년 정도 보조 디자이너로 일한 뒤 본격적으로 자신이 직접 기획한 옷들을 디자인할 수 있다. 그리고 3~4년 더 현장 경험을 더 쌓으면 팀장급 디자이너로 올라설 수 있다. 디자인실장은 10년 이상 경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옷 하나를 디자인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의 말이 좀 더 이해된다. 우선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 작업이 많이 필요하다. 길거리를 돌아다니거나 패션쇼에 가보거나 텔레비전, 잡지, 인터넷 등을 보며 트렌드를 분석하는 작업이 가장 먼저다. 시장과 사람들의 기호의 흐름을 파악한 것을 토대로 컨셉트를 잡는다. 그러고 나서 컬러와 소재 구성, 스케치와 스타일링이 뒤를 따른다. 마지막으로 샘플을 만들고 품평회를 열어 최종 디자인을 확정한다.

“일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라요. 패션 디자인은 끝없이 이어지고 반복되는 일이거든요. 게다가 계절 상품 중간중간에 시장에서 반짝 흐름을 형성하는 스팟 상품도 몇 개씩은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이 힘든 만큼 얻는 것도 많다. 무엇보다 변화하는 사회를 항상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항상 새롭다.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것을 볼 때면 말로 표현 못할 뿌듯함이 밀려든다.

대우 또한 좋다. 디자이너는 대체로 같은 직급의 사무직보다는 급여가 많다. 게다가 능력과 실력에 따라 충분히 충분한 대우를 받는다. 재미도 느끼고 돈도 벌 수 있는 꽤 훌륭한 직업이라는 게 김 실장의 말이다.
“앙드레김을 보세요. 일흔이 넘었지만 왕성한 활동을 하잖아요. 열정만 있으면 죽는 순간까지 재미있는 게 패션 디자인입니다.”

글·사진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끈기·열정 없으면 ‘중도하차’
패션 디자이너 되려면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길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대학 진학과 전문학원 입학이 그것이다.

대학에는 의류학과, 의상학과, 의상디자인학과 등이 패션 디자이너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대학에 따라 생활과학대학이나 미술대학 등의 단과대 안에 디자이너 관련 학과가 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의류숍이나 중소의류업체 등에 들어가 현장 훈련 과정을 거치면서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선다.

대학에 가지 않고 전문학원에 가는 방법도 있다. 에스모드나 국제복장학원, 에스디에이 등 유명한 패션 디자인학원들이 많다. 보통 2~3년 과정으로 운영된다. 커리큘럼은 일반 학원과 달리 빡빡하고 고되게 짜여 있다. 게다가 과제가 많아 중도에 그만두는 이들도 있다. 학원을 마치면 학원과 연계된 업체에 취업하기가 쉽다.

패션 디자인은 어느 정도 선천적인 감각이 필요한 일이다. 패션이나 미술 등에 남다른 센스나 감각이 있다면 도전해 볼만하다. 어려서부터 옷에 관심을 많았거나 패션 잡지 등을 즐겨봤다면 감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디자이너의 꿈을 갖고 있다면 학생 때부터 시간을 내서 피팅모델(새 옷을 미리 입어보는 사람)을 해 보거나 패션업체에서 인턴으로 활동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된다.

패션 디자이너의 수는 다른 직종보다 상대적으로 많다. 하지만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많지 않다. 10명이 시작하면 1~2명만 남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일이 고되고 배우는 과정이 길기 때문이다. 따라서 끈기와 열정, 체력이 많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제대로 배워서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지 않다면 시작하지 말라”고 김선희 실장은 조언했다.

패션 디자이너는 꼭 디자인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의류 쇼핑몰을 운영하거나 엠디(머천다이저), 바이어, 패션 스타일리스트, 패션 이벤트사 등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 따라서 어느 정도 패션 디자이너로서 입지를 굳힌 다음에 관련 업종에 도전하는 것도 괜찮다. 박창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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