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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시각

[Why] 깜찍한 디자인에 무지개색 표지, 성경책 맞나요?

종교에 무관심한젊은층에 가까이英단어·숙어 정리된韓英성경도 인기
회사원 김유정(39)씨는 한영(韓英)성경을 사러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가 화들짝 놀랐다. 성경의 종류가 매대 하나를 다 차지할 만큼 다양했기 때문이다. 색상은 무지개 색깔로 화려하고, 크기도 아주 큰 것부터 손바닥만 한 미니 성경까지 수십 종이다. 지갑인 줄 알고 열어보니 초미니 성경책이 들어 있다. 한영성경만 해도 예닐곱 군데 출판사들이 각기 고안해낸 디자인을 뽐내며 진열돼 있어 고르는 데만도 30분이 넘게 걸렸다. "성경으로 영어 공부 좀 해볼까 하고 사러 간 건데 이렇게 많은 종류의 성경책이 있는 줄 몰랐어요."

▲ 지갑성경?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따로 마련된 성경 매대. 컬러풀한 색상에 다양한 크기의 성경들이 눈길을 끈다. /전기병 기자

◆'블랙 바이블'은 싫어!

거룩하고 신성한 '하느님 말씀'이 깜찍 발랄해지고 있다. 검은색 혹은 자주색 가죽으로 덮인 성경책을 아직도 갖고 다닌다면 구식 소리 듣기 십상이다. 연두색, 보라색, 심지어 분홍색 표지가 대세다. 불 기운으로 눌러 찍은 '불박' 또는 '금·은박' 성경 대신 경쾌한 일러스트가 그려진 파스텔톤 성경책이 인기다. 겉으로 봐선 전혀 성경책이라고 볼 수 없는 제품도 즐비하다. 다이어리, 지갑 스타일의 미니 성경. 귀퉁이에 '선물용'이라고 적혀 있을 만큼, 이른바 팬시상품의 대열에 성경이 오른 셈이다.

성경의 대변신은 2007년 개역개정 성경이 보급되면서 시작됐다. '생명의말씀사' 손명희 차장은 "개정 성경이 출판되면서 각 출판사들이 과감한 표지 색상 개발에 뛰어들었고, 취향에 따라 선택범위가 넓게 판형과 디자인을 다양화했다"고 말했다. 생명의말씀사가 펴낸 보라색 성경은 파격이었다. "성경의 상징인 검은색에서 탈피했으니까요. '너무 예쁘다'며 사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성경 같지 않다'며 주저하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성경도 패션입니다"

발랄한 성경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단연 20~30대 젊은 층이다. 손명희 차장은 "'나 성경이다'라고 써 있는 책을 젊은이들은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짙다"고 전했다. 두란노서원 성경팀 송성봉 목사는 "일반 출판물 디자인은 나날이 세련되어지고 개성화되는데 성경만 정체돼 있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말한다. "교회에도 새로운 바람이 부는데 언제까지나 검은색 성경표지에 매달릴 이유가 없었지요. 특히 젊은이들은 부담 없이 휴대할 수 있고 기존 성경과 달리 액세서리처럼 예쁘고 개성 있는 성경을 선호한다는 추세를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검은색, 자주색에서 파란색, 빨간색으로 색상을 넓히던 성경 표지는 최근엔 주황색, 노란색, 연두색 같은 파스텔톤으로 다양해졌다. '돈피'로 대표되는 가죽 원단도 일반 다이어리 원단으로 바뀌었고, 성경의 두께도 한결 슬림해졌다. 송 목사는 "요즘엔 목회자들 마인드도 오픈되어 새로운 디자인의 성경을 선호한다"면서 "교회에 단체 납품을 할 때에도 연령별로 디자인과 사이즈를 달리해 주문받는다"고 말했다.

◆韓英성경의 약진

성경의 또 다른 트렌드는 '한영성경'의 약진이다. 영문과 국문이 병기된 한영성경의 속풍경도 재미있다. 국문성경에선 주석이 차지하는 자리를 '꼭 알아두어야 할 영어단어'와 숙어가 채우고 있다. 덕분에 한영성경은 기독교 신자뿐 아니라 비신자들, 어학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인기다. 송성봉 목사는 "한국 사회의 영어 붐이 교회에도 고스란히 옮겨왔다고 보면 된다"면서 "최근 대형 교회들에서 영어예배와 영어성경공부 프로그램이 활성화되고 있는 현상과 맞물려 있다"라고 덧붙였다. 생명의말씀사는 지난해 말 주니어 한영성경을 펴내 호응을 얻고 있다. 신약만 쉬운 영어로 번역한 책이다. 지식인층에서도 한영성경은 인기가 있다. "영어 원문으로 읽을 때 이해가 더 정확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성경의 변신엔 종교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를 교회로 끌어들이려는 의지도 담겨 있다. "성경이 어디 저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니라 내 삶과 밀접한 친근한 존재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김윤덕 기자 sion@chosun.com

기사입력 : 2011.05.28 03:03 / 수정 : 2011.05.2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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