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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이게 소방서? '119' 없으면 몰라볼 뻔

▲ 건축가 류재은씨

건축상 휩쓴 '을지로 119 안전센터' 설계자 류재은씨

"공공건물들은 왜 다 성냥갑이어야 합니까…
숭고한 일 하시는 분들이 자부심 느끼게 만들었어요"
서울 중구 을지로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 찬반 논란 속에 이라크계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유선형의 디자인플라자가 끝나는 지점, 곡선의 흐름에 방점을 찍으려는 듯 사각 박스를 엇갈리게 끼운 모양의 작은 건물 하나가 들어서 있다. 언뜻 봐선 무슨 용도인지 감 잡기 어려운 독특한 외관. 외벽의 빨간 부분에 쓰인 숫자 '119'를 보니 그제야 정체가 파악된다. 지난해 완공돼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과 서울시건축상 우수상을 탄 '을지로 119 안전센터'다.

"서양에선 아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으로 소방관이 꼽히는데 우리는 그렇질 못하다. 매일 매일 생명을 거는 숭고한 일을 하는 소방관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디자인을 입은 이 작은 소방서를 설계한 건축가 류재은(58·시건축 대표)씨는 "동사무소, 경찰서 같은 공공건물 하면 떠오르는 무성의하고 권위적인 성냥갑식 건물을 벗어나고자 했다"고 했다. 피자 조각처럼 생긴 지형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형태적인 아름다움을 주기 위해 3개의 상자형 공간을 만들고 용도에 따라 각각 소방관이 머무는 숙소, 소방차 주차장, 사무실로 나눴다. 연면적 907.9㎡(274.6평). 지금껏 건축상을 받은 공공건축물 중 가장 작지만 지방 소방서 관계자는 물론이고 건축을 전공하는 외국 학생들까지 견학을 오는 명물이 됐다.
 

▲ 다른 크기의 상자 3개를 엇갈리게 끼워 넣은 듯한 형태의 을지로 119 안전센터. 해외에서 견학까지 오는 유명 건축물이 됐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류씨는 "긴급 사태가 생기면 조금의 지체도 없이 바로 출동하는 소방차의 역동성을 표현하기 위해 작은 박스 위에 큰 박스를 올려 옆에서 보면 건물이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줬다"고 했다. 징크(아연)판을 쓴 외벽에 작은 창 20여개를 엇갈리게 배치해 동(動)적인 느낌을 더했다.
 
▲ 디자인플라자에서 바라본 뒷모습. 왼쪽으로 소방관이 머무는 구급대기실의 돌출 창이 차례로 보인다.

개성 있는 디자인 못지않게 기능적인 소방서를 만드는 것도 중요했다. 소방차의 출동을 지켜보는 상황실을 통유리창으로 만들어 외부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디자인했다. 소방관이 대기하는 구급대기실엔 디자인플라자 쪽으로 향하는 돌출 창을 둬 외부 전경을 바라보며 심신의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축구선수가 최고의 컨디션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숙소를 만드는 것처럼 사회를 위해 희생하는 이들이 최상의 조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했다.
 
▲ 통유리로 만들어 소방차 출동을 내려다볼 수 있게 만든 상황실.

류씨는 2007년 서울시건축상 대상을 탄 서울 논현동의 상업건물 '세븐 헤븐'을 비롯해 성북동과 한남동 일대의 이른바 '회장님댁' 50여 채를 지은 고급 주택 전문 건축가다. 이번 안전센터는 서울시가 발주한 공공건물이다. 류씨는 "건축주 한 명과 일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공(公共)·사회라는 건축주를 상상해 건물을 만드는 것이 건축가로서 더 사명감을 갖게 한다"고 했다.

을지로 안전센터의 공사비는 3.3㎡당 500만원. 서울시에 있는 다른 소방서의 공사 예산과 같다. 그는 "디자인을 하면 예산이 더 든다는 건 오해"라며 "어떻게 더하고 빼서 효율적인 디자인을 만드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 2010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한 서울 중부소방서 '을지로119안전센터'.건축가 류재은이 설계했다./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기사입력 : 2011.04.13 03:07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