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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사람들

[프로의 세계] “글씨는 곧 그림이고 디자인이죠”

디자이너 겸 캘리그래퍼 공병각
사람들은 그를 캘리그래퍼라고 부른다. 이효리·손담비·이은미·애프터스쿨·은지원·서인국 등 유명 가수들의 앨범 재킷에서, 각종 CF 등에서, 개인 미니홈피 스킨 등에서 자주 보아 온 손글씨의 주인공인 까닭이다.

또한 사람들은 그를 작가라고도 부른다. 그가 사랑과 이별의 과정을 겪어본 이라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감성 에세이들을 펴내고 수없이 많은 청춘들의 지지와 성원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명함에도 ‘공병각’이라는 이름 밑에 캘리그래퍼와 작가라는 서브타이틀이 붙어 있기도 하다. 
 


후회하지 않도록 치열하게 산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일련의 작업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걸 싫어한다. 남들이 그를 어떻게 부르건 그 자신은 자신이 캘리그래퍼도 작가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캘리그래피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글씨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이란 뜻이 담겨 있어요. 하지만 전 한 번도 아름답게 쓰기 위한 노력을 한 적이 없거든요.”

작가라는 타이틀도 마찬가지다. 에세이 책들을 내고 인기도 얻었지만 잘 쓰기 위한 노력을 한 적이 없다.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쓴 것도 아니고요. 그저 그때그때 제 자신의 생각과 감정들을 기록한 것뿐이죠. 그래서 누군가가 저를 작가라고 부르는 게, 캘리그래퍼라고 부르는 게 불편해요.” 전문적으로 손글씨를 쓰고 글을 쓰는 이들의 치열함과 노력에 비하면 자신의 노력은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겸손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생각이 어떻든 세상은 그를 잘나가는 캘리그래퍼로, 또 청춘과 가장 공감하는 에세이 작가로 부른다. 그의 글씨며 디자인, 날카롭고 섬세한 감성을 선망하고, 그가 오늘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삶을 부러워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이런 유명세가 그는 그저 반갑지만은 않다. 아무리 지금의 자신을 부러워하더라도 결국 남들이 보는 건 외피뿐이기 때문이다.

“멋진 차를 몰고, 보기엔 쉽고 즐거워 보이는 일을 하고, 자유분방하게 사는 것 같고, 유명인들을 친구로 두고 있고…. 그런 겉모습만 보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지금이 있기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는 잘 모르죠.”

그가 생각하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타이틀은 ‘광고인’이다. 캘리그래퍼로, 또 작가로 세상에 주목받기 전부터 광고 그래픽 디자이너로,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로, 영상 비주얼 디렉터로 쉼 없이 달려왔기 때문이다. CF·광고물·문구류·인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의 디자인은 빛을 발했다. 2008년부터는 ‘mnid’라는 그래픽 디자인 및 광고회사를 설립해 맹렬하게 활약하고 있는 중이다.

“20대 때는 정말 쉬는 날이 없었어요. 하루에 2시간 자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1년 365일 중에서 350일가량을 일하면서 지냈을 정도죠.” 일에 대해서는 완벽을 기하고자 하고 작은 실수조차 쉽게 용납하지 않는 철두철미한 성격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스스로 자신을 “소심하고, 뒤끝 있고, 집요한” 성격이라 평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그만큼 욕심이 많다는 뜻이기도 해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꼭 반드시 해내야 하는 성격이거든요.” 처음 광고에 손글씨 작업을 시작한 것도 광고 디자인 작업을 더 잘해내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남들이 다 쓰는 흔한 글자 폰트 대신 독창적인 글씨를 디자인으로 활용하고 싶었어요. 글씨를 일종의 나만의 디자인 소스로 생각한 거죠.” 광고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툴을 활용해 작업을 하는 것처럼, 자신은 남들이 가지지 못한 툴 하나를 더 가진 것뿐이라는 생각이었다.

“제가 제 자신을 캘리그래퍼로 생각하지 않는 이유예요. 제게 글씨는 글씨가 아니라 문장 그 자체로, 하나의 그림이자 디자인이거든요.” 하지만 그런 의도와 달리 그의 글씨는 캘리그래피 작품으로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더욱이 2년여 전, 그가 뜨겁고 애틋했던 자신의 사랑과 이별의 경험을 자신만의 손글씨체로 담아낸 에세이집 ‘잘 지내니? 한때 나의 전부였던 사람’을 펴낸 후로는 캘리그래퍼로서 더욱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의 글과 글씨를 보고 왈칵 눈물이 치솟고, 따뜻한 위안을 얻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었다는 고백들이 줄을 이었다.  

그 때문에 그의 책은 ‘사랑에 아파 본 경험이 있는 청춘’들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책에 담긴 수많은 문장들은 전부 그 자신이 열 권이 훨씬 넘는 노트와 일기장에 적어두었던 메모들을 정리한 것이다.

2010년에 펴낸 두 번째 에세이집 ‘전할 수 없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도 이런저런 단문들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어떤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단어들, 감정들, 느낌들을 ‘메모’라는 형식으로 붙들 뿐이다. 그래서 그의 생활 공간 겸 작업 공간 안 어디고 그의 손이 미치는 공간 안에는 늘 단정한 색지와 색연필들이 준비돼 있다.

실제로 인터뷰를 하기 위해 사진을 찍히는 순간에도 그는 특유의 감성적인 글씨로 자신만의 생각을 스케치하고 있었다. “전 글을 잘 쓰지는 못해요. 그래서 제 글들은 어법이 틀리거나 맞춤법에 맞지 않는 것도 많아요. 글씨도 획을 이렇게 하면 예쁠까, 굵기를 달리 하면 예쁠까, 그런 생각도 안 하죠.”

글씨는 사람을 표현한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필체를 가지고 있잖아요. 제 손글씨도 마찬가지예요.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필체’인 셈이죠.” 물론 작업 의뢰에 따라 글씨체에도 조금씩 변화를 주기는 한다.

“좀 더 젊고 발랄하게, 여성적인 느낌으로, 투박한 느낌으로 등등 작업 내용에 따라 필체에 조금씩 변화를 주기는 해도 기본적인 필체는 거의 같아요. 다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경향은 있죠. 쓰면 쓸수록 더 잘 써지기도 하고요.”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과 생김새가 달라지듯 글씨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변화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는 지금 자신과 자신의 손글씨들에 쏟아지는 칭찬들에 들뜨지 않는다. 지금이야 ‘핫(Hot)’하다, ‘트렌디’하다는 칭찬과 함께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무관심해질 수 있는 세상임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항상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해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부단히 노력하며 제 일을 할 뿐이죠.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더욱 치열하게요.”

캘리그래퍼와 작가로 정의되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는 그이지만 올해도 그는 내내 캘리그래퍼로, 또 작가로 왕성히 활동할 예정이다. “조만간 문구 브랜드를 론칭할 예정이기도 해요. 책도 몇 권 쓸 예정이고, 문구와 책들을 함께 세팅한 카페를 열 계획도 있어요. 아, 물론 광고 작업도 계속할 것이고요. 더 많은 꿈을 꾸고 더 많이 도전할 계획입니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서요.”

약력 : 1979년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광고 디자이너. 캘리그래퍼. 에세이 작가. 2002~2007년 (주)617 광고 그래픽 디자이너 및 주니어 디렉터. 2006년 (주)617 조감독 병행. 2007~2008년 (주)vkr 모션그래픽 영상 비주얼 디렉터. 2008~2009년 스티키몬스터랩 대표. 2009~2010년 (주)굿마더 이사 겸임. 그래픽 디자인 및 광고회사 mnid 대표(현). 저서 ‘잘 지내니, 한때 나의 전부였던 사람’, ‘전할 수 없는 이야기’, ‘마이 퍼스트 해피 다이어리’.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

한국경제 | 입력일시 : 2011-01-24 17:43